2009년 6월 19일 금요일

남도여행 첫날 (3) - 진도 : 신비의 바닷길, 세방낙조대, 다시 울돌목으로

그저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비로움을 느낄수 있다. 표면이 이럴진대 그 속은 오죽하랴마는차마 그 속속들이 살펴볼 순 없는 여행길.

그러나...

바다 거죽의 눈부심만으로도 가슴 벅찬 여행길은 오늘도 계속된다.

 

운림산방과 쌍계사를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가까운 곳에 있다는 "신비의 바닷길"을 보기 위해.

 

조수간만의 차이로 섬과 섬 사이의 바다가 바닥을 드러내며 약 3km 가까운 길을 연출한다는 곳. 이미 TV 나 신문 등을 통해 여러 번 접해봤지만, 직접 가보는 건 처음이다.

 

하지만...

때가 때다보니 우리가 그곳에 도착한 날 바닷길은 열리지 않았다. 눈 앞에 펼쳐진 바닷길을 보려면 축제가 열리는 4~6월 경에 방문하는게 좋겠지만..그때는 내 한 몸 활자에 묶여 있었으니........아쉽긴 하지만 언젠가 와 볼 기회가 있겠지. 이번 여행은 이 바닷길을 보려고 시작한 길이 아니니까. 그래도..살짝쿵 아쉬운 마음이 드는건 어쩔수 없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길 한 번 보고나 가보자....하야 아부지가 차를 몰았다.

 

현대판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곳 신비의 바닷길은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 "피에르 랑디" 씨가 진도로 관광을 왔다가 이 현상을 목격하고 프랑스 신문에 소개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1996년에는 일본의 인기가수 덴도요시미씨가 신비의 바닷길을 주제로한 "진도이야기(珍島物語)"노래를 불러 히트를 하면서 일본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진도군 문화관광 홍보 페이지 중에서..]

 

저 위의 사진은 운림산방에서 바닷길 가는 도중...멀리서 바닷길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좋은 곳" - 이곳의 이름은 위에도 언급된 '피에르 랑디'의 이름을 따서 '피에르랑디 전망대'라고 하더라...=.= 그 사람의 흉상도 있다....바닷길이 열리는 즈음에는 그 좁디 좁은 도로에 사람들이 와글와글, 전망대에 발디딜 틈이 없겠지. 바닷길을 조망할 수 있는 꽤나 멋진 곳에 마련된 전망대...열린 바닷길을 볼 순 없었지만, 사람들없이 우리 가족들만 저 바다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우쭐해지기도 ^^

 

 

전망대에서 볼 게 아니라 바닷길이 열리는 코앞까지 가보기로 했다. 운림산방 초입부터 흩뿌리기 시작한 거센 비줄기는 그 기세가 약간 줄어들었지만....=.= 바닷가 부두에 도착하니 비가 문제가 아니다. 바다로부터 육지로 달려드는 바람의 매서움은 생각보다 드셌다. 이야....=.= 날씨탓도 있겠지만 대단한 바람일세.....관광객도 없고 바닷일에 땀흘리는 분들도 없고..고즈넉하고 을씨년시럽기까지 한 부둣가의 우리 가족 세 사람...그러나..+.+ 나름대로(!) 재미나게 부둣가 구경하기~!

 

위의 동생녀석 사진은 내가 찍어줬다..

저 사진을 얻기 위해서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히길 기다린게 몇 십분이던가...세찬 바람이나 쏟아지는 물줄기보다 원하는 물보라 사진을 얻기가 더 힘들더라..~.~ 쩝..동생한테 '나도나도~'하야 사진 찍었건만..아직 디카가 손에 익지 않은 녀석의 작품은.....ㅠ.ㅜ 물보라 기다리느라 방파제를 등지고 서 있던 난 거친 파도의 울음소리에 무지막지 쫄아버렸다. 등 뒤에서 울리는 파도의 굉음은 정말..=.= 생각보다 무지 무섭더라. 한낮에 겪은 바가 이럴진대 바람이 거친 날, 태풍이 부는 날 어촌의 밤은...얼마나 무서울까..+.+

생각보다 좀 더 어둡게 나왔지만....저 멀리 보이는 섬과 연결되는듯한 길의 일부분이 이 방파제 오른쪽으로 살짝쿵 얼굴을 내밀고 있다. 점점 그 모습은 사라지지만...언젠가 저 길을 따라 저 섬까지 걸어갈 수 있으려니.... 그러나 지금은,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거칠다 해도 지금은 이 풍경이 좋다...

 

 

 

아...사진이 있다.^^;;

방파제 오른쪽으로 난 길..사진이 좀 잘렸다;;;;

바닷길이 열릴 때 이 길로 사람들이 오갈 터, 오늘은 거친 바다에 몇몇 조각배들이 풍랑에 들썩이고 있을 뿐.

그래도 좋다. 거칠고 다가가기엔 굉음의 엄포가 생각보다 무섭긴 했어도 바다다. 남해의 바다다. 밝은 햇살의 그림자를 푸르름으로 보듬는 바다가 아니라언제 성난 물보라를 내게 엎지를지 모를 바다였지만.....그래도 좋다..

 

 

 

 

 바닷가를 떠날 즈음 빗줄기가 다시 거세졌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세방낙조대를 가야하는데....이미 점심시간을 좀 지난 오후 2시. 일단 주린 배를 채우고 젖은 몸을 말리기로 했다. 성수기를 지닌 바닷가 횟집은 그닥 끌리지 않아 진도군 홈페이지에서 찾은 식당을 찾았다. 좀 생뚱맞으려나?? ^^ 섬에서 먹는 오리주물럭이라..그래도 회보다는 뜨거운 음식을 먹고파 들어갔는데...생각보다 좀 후즐근한 내부 모습에 살짝쿵 걱정...게다가 주인 아주머니의 미적지근한 태도가 좀...그/러/나/

 

.........서울의 식당에서는 손님이 앉자마자 물이나 물수건 등이 나오고, 메뉴 주문을 받으러 오고 금방금방 음식이 나오고 후루루룩 금방 먹고 휘리리릭 나가고....채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은 이런 식사/서비스 방법에 내가 너무 길들여졌나보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이런 '속도'에 익숙해져 있는지 뼈져리게 느꼈다. 진도와 여수 돌산도..이렇게 남도의 두 곳에서.......후줄근한 식당 분위기와 미적거리는 아주머니때문에 '.....잘못왔나보다. 나중에 집에 가면 홈피에 항의(!)할까봐...' 했건만.....=.= 아아 나의 이 아둔한 어리석음이여...우리가 식당에 들어간 시간이 보통의 점심 시간을 좀 지난 시간이었던 것과, 반찬이나 주음식이 한꺼번에 나오는 것을 보며....'어.....+.+ 오오~' ....... 맛깔스런 전라도 음식의 첫 포문을 연 이날 점심은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듬뿍듬뿍 담겨 나온 수많은 반찬들과 3인분으로 생각되지 않게 양많고 맛좋은 오리주물럭 [오리고기는 중국에서 많이 먹었지만, 한국에서 주물럭요리로 먹는건 이게 처음이었다..+.+], 그리고 막판 볶음밥서비스까지... 겉모습과 첫 인상만으로 성급하니 인상지어버린 내 어리석음이 참...민망했다. 내 잣대로만 보면 세상만사 모두 마음에 안 드는 일 뿐이겠지...~.~;;

성급하게 생각해버린 내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여 주인 아주머니에게 민망민망민망...처음엔 외지인이라 좀 낯설게 대해주신 아주머니도 가족여행 왔다는 말에 점차 살갑게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시고.. 아무리 비가 오고 낙조를 보지 못하더라도 세방낙조전망대까지 가는 길이 드라이브 코스로 좋으니 꼭 들렸다 가라고 약도까지 알려주시니....자성하는 마음에 아주머니께 식사 맛나게 잘 했다는 인사 한 번 더 드리고 식당문을 나섰다. 

[먹느라 바빠서 음식사진을 못 찍어 아쉽다.ㅠ.ㅜ]

 

 

 

아주머니가 가르쳐주신대로 세방낙조 전망대를 향해 출발~~~!

날씨가 궃었지만...이 길을 가지 않고 그냥 진도를 떠났으면 내심 아쉬워할 뻔 했다..+.+ 꾸불꾸불 해안가를 따라 나 있는 지방도를 따라 가는 길이었는지라 꽤 거리가 나왔고 커브가 심한 곳도 있어서 빗길에 좀 아슬아슬하기도 했지만....풍광만큼은!!! 풍경만큼은!! 비오는 날에도 이리 운치 있으니 햇살 좋은 날에는 오죽하랴~ 흔들린 사진이 아까워라...ㅠ.ㅜ

 

 

 

 

따스한 밥의 온기로 속이 달래져서였을까....신나게 드라이브길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어느새 잠들어 버린 나;;;; =.= 아빠랑 동생녀석은 빗길에 노심초사하고 있었건만..."다왔다~ 일어나~"라는 아부지 말씀에 부시시시 일어나보니.....아직 길 위 인데?? +.+ 네비게이션에서는 도착했다고 나오네...'전망대'가 있는거 아니었어? '글쎄..일단 이정표에는 이곳이 세방리랬어. 누나가 말한데가 여기 아냐?' 하며 동생이 가리킨 곳은..여타 '전망좋은 곳'마냥 도로 한켠에 마련된 곳.....여긴가..? =.=a

 

 

 

.....진도군 홈페이지에 가면 그림지도(!)에 세방낙조대가 '전망대'마냥 그려져 있길래 높은 곳에 따로 전망대가 있을줄 알았다...그런데 막상 가보니..그냥...지방도 옆에 마련된 자그마한 휴게소...보다도 작은 곳. =.= 이동화장실과 음료수 자판기가 한켠에 위치한 곳...여차하면 못 찾고 지나치기 쉽상이겠네.....했지만...

더 세차진 바람과 내리쏟는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본 남도의 바다는....멋지다 +.+

 

 

 

 

 

기상청에서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지정하였다는 세방리의 낙조....를 보기엔 이른 시간인 오후 4시에 도착;;; =.= 낙조는 볼 수 없었더라도 같은 빛깔의 하늘과 바다가 입맞춘 곳에 널려있는 다도해의 작은 섬들이 보여주는 풍경은.....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멋졌다. 멋지다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여기서도 내 아둔한 선입견이 미련하게 작용한 것일까?? 서울에서 조금이라도 유명한 곳이라고 하면 순식간에 인공적인 가미가 더해진다. 숲과 바위만 있던 곳이 어느 새 음식점을 대문으로 삼고 있다...그래서였을까? '전망대'라는 말에 번듯한 건물과 동전 넣는 망원경이 즐비한 광경을 무의식적으로 연상한 것인가.... 여행이란 기존의 내가 가지고 있던 틀을 깰 수 있는 성찰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하늘의 햇빛을 조명으로, 바다가 들려주는 파도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을 에어콘삼아 자연을 직접 '전망'할 수 있는 이 곳만큼 더 좋은 전망대가 어디 있으랴!!!

 

 

 

 

.....그저 들려주는 관광객들의 아픈 다리를 쉬어갈 수 있게끔 마련한 의자와, 마른 목을 축일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 - 음료자판기와, 멀고 먼 길을 달려온 사람들을 위한 자그마한 배려, 이동화장실이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자연의 전망대.

세찬 비바람에 온몸이 홀딱 다 젖었건만 우리가족 세 명은 춥다고 움추리면서도 그저 사진찍기에 즐거움에 빠졌다. 디카, 카메라 파노라마 찍기의 재미에..

 

 

 

 

전망대 오른편의 여러 섬들. 저 멀리 거북이가 머리를 하늘로 쳐든 마냥 희한하게 생긴 섬도 보이고....

[섬 이름을 알았는데;;;까먹었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 보면 엄지 손가락을 하늘로 쳐 올리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도 보인다.^^a]

더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섬들.. 동생녀석 말마따나 "여긴 동해처럼 지평선 보기가 힘드네. 좀만 가면 섬이 있고 또 섬이 있고..." 익숙한 동해안과는 또다른 매력.

 

 

 

전망대 바로 밑을 보니

양식장인가..그물이던가;;;; 여하튼 부표들이 떠 있더라.

살짝 필터 조절을 했더니 바다거죽에 비쳐진 속내의 깊고 얕음을 살짝쿵 엿볼 수 있더라...

저기는 좀 얕고 저기는 좀 더 깊고....

"어 아빠~ 저긴 깊다. 낚시할 수 있겠는걸~"

"저기선 뭐가 잡힐까?"

^~^ 누가 낚시광들 아니랄까봐.....

 

 

 

 

 

이 사진은 전망대 왼편의 모습.....일거다 아마 ;;;

진도군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저 바다위에 떠있는 섬들의 진경들을 돌아볼 수 있는 유람선도 있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궃은 날씨도 그렇지만, 이번 여행 계획에서는 시간상 유람선까지 탈 여건이 되지 못했는지라.....사실 출발할 때만해도 홈페이지에 나와있던 관매 8경이나 조도 6군도 등 진도근방 섬들을 유람선으로 돌아보는 코스에 그닥 끌리지 않았는데...+.+ 나중에 다시 가면 꼬옥 타보리라~ 저 섬들을 가까이서 보리라~


전망대 바로 옆 해변가...라고 할 수 있으려나..^^;;
저 구비를 돌아가면 세방리가 나온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세방낙조대를 떠난다.
우리가족이 떠날 때 즈음 낙조대를 찾아 사람들이 또 차를 세웠다. 비가 오고 바람이 거세도 유명한 곳은 유명한가 보다.
언제고..
가을의 햇빛을 머금은 바다가 그리울 때, 겨울의 낮은 하늘 그림자가 드리워진 바다가 보고플 때,
봄내음 가득 실은 바람이 진도로부터 바다로 내달을 때,
뜨거운 여름의 태양이 우글거리는 바다가 보고플 때.....
그 언젠가 내 꼭 다시 찾으리라...
 
^~^ 옆 사진은 이제..진도에서 나가기 위해 진도읍을 향하는 길에서..동생 미니녀석 디카 찍기 연습시키려 찍은 사진..
여행떠나기 전에 연습 좀 시켜놓을껄..
내가 갸 찍어준 사진들은 볼만한데, 갸가 날 찍어준 사진들은 영..~.~
 

 
 
짜아식...연습좀 미리미리 해두지..^^
이래저래 요리조리 앵글 바꿔가면서 찍어보라고 시켰다....가 그냥 내가 찍었다.
초점을 어디다 맞추는 것부터
알려줘야하니 뭐..~.~
 
비가..
이때까지도 정말 열심히 내리더라.
내심 '...태풍이 상륙하려나봐~'
걱정이 일 정도로 강풍과 낙우가 거셌다.
허나...
무엇이 대수랴~ +.+
빗길에 차가 속도를 내지 못하야
이동시간이 좀 더 걸리는 것일 뿐.
길 위에서
우리 세 사람의 마음은
그저 웃음으로만 가득 찼다.
단...
=.= 동생녀석이 찍어준
내 사진들이 모두 흔들린 것만 빼고...
 
 
 
다시
진도대교다.
이번엔 육지쪽에서 바라본다.
6시간마다 바뀌는 울돌목의 물방향은 그새 바뀌어 있다.
아침 나절 진도에 들어갈 때만 해도 서해에서 남해쪽으로 흐르던 물머리가
늦은 오후 남해쪽에서 서해쪽으로 돌려져 있다.
400여 년 전 그 때도 이러한 방향돌림으로 그는 여기서 이 나라의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는가.
 
이쪽에서는 왼편으로 하늘을 찌를듯한 새하얀 충무공 승첩비와 전라좌수영터를 볼 수 있고
진도쪽에서는 산 위에서 울돌목을 조망할 수 있는 정자와  그 아래 강강수월레터가 있다.
그러나 난 울돌목의 소용돌이를 직접 보고팠다.
다리 위를 건널 수 있게 해놨다지만, 비바람이 세찬고로 아부지가 날 말린다. =.=
그래서 더 가까이서 울돌목을 볼 수 있는 곳을 찾는다.

다리를 건너는 자동차들과 내리꽂는 낙우소리 가운데에서도
울돌목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400여 미터에 달하는 명량이건만 실질적으로 배가 통과할 수 있는 넓이는 200여 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폭도 좁고 암초의 위험과 조수의 차이로 인해 생기는 바닷길의 형세가 지극히 험한 곳 - 울돌목. 여기가 그래서 울면서 돌아가는 길목, 울돌목이구나....그래서 명량[鳴梁]이구나....이 바다에서 그는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얼마나 고뇌했을까. 그의 숨결이 아늑하지만..그래도 난 지금 울돌목 앞에 서 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뗀다.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그날 울돌목이 내게 들려준 회한의 울음소리를.
채 잊기 전에 다시 갈 수 있으려나....
그러나 그 날 울돌목 앞에 서 있었던 내 모습만큼은 잊지 않으련다.
그토록 가보고팠던 곳에서 울돌목의 바람과, 울돌목의 소리를 온 몸으로 받았던 나를 기억하련다.
 
그리고 우리의 길은
진도를 돌아 해남 땅끝마을...토말[土末]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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