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2일 월요일

남도여행 둘째날 (3) - 하동 쌍계사 -> 구례 화엄사 -> 곡성/옥과

대한민국/전라남도어찌하다보니 본의아니게 포스팅이 늦어졌다..=.=;;
어여 써야지, 사진들이 빛을 보지!
 
 
하동 평사리 악양들에 수놓아진 하늘빛 자수를 뒤로하고,
숨막힐듯 푸르른 녹음을 뒤로하고,
다시 섬진가을 끼고 달리는 길.
멀지 않은 곳에
그 유명한 "화개장터"가 있다.
 
 
화개장터 가는 길...
가로수가 좀 더 멋진 길이 있었건만...
반대편에 차 안 오는 길이 없어서..ㅠ.ㅜ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길은 계속된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따라 화개장터엔~"
 

화개장터다...

사실..노래를 듣고 내가 혼자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우리가 도착한 날은 장날이 아니라는 걸 평사리에서 익히 듣고 갔던지라 별 기대 하지 않고 갔는데...여기가 확실히 유명하긴 유명한건지...닫혀있는 가게들이 많은 가운데에서도 전국각지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을 위해 열려있는 몇몇 음식점들과 옆 사진과 같은 비석..그리고 단정하게 정리된 점포들과 '이곳이 화개장터'임을 확실히 인식시켜주는 여러가지 장식물들, 구획들....음...유명해진 뒤 정리된걸까...노래를 흥얼거리며 기대를 갖고 온 곳 치고는...너무 "꾸민 느낌"에 좀 실망감이 크다. 그렇다고 나만의 상상, 내가 기대하는 '추억'의 장터를 강요할 순 없겠지...요즘같은 세상에 이유야 어떻든 유명해진 자기 고장의 먹고살길은 뚫어야 하지만...허나...약간은 아쉬움이 드는 부분이다....이 아쉬움은 화개장터초입서 쌍계사 들어가는 길에까지 이어진다.

 

 
아부지 말씀이..예전에 하동 쌍계사로 가려면 바로 이 "십리 벚꽃 길" 밖에 없었다고 한다. 화개장터 앞에서 곧장 쌍계사로 통하는 잘 뚫린 길이 있었으나..우리는 아부지의 추억을 좇아 다리 하나를 건너 이 길에 들어섰다.

 

지금은 벚꽃계절이 아니니,

흐드러진 흰 꽃 대신,

나무들이 모두

초록색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를 맞아주는 계절.

녹음의 연속이 주는 

싱그러운 길.

벚꽃이 필 때였다면

이렇게 인적이 없는 길을 만나진 못했겠지..

 

그렇게 빈 길 위에서

자연이 주는

풀내음 가득한

상쾌한 바람이

차 안을 가득 채운다.


 

은...
언제나 열려있고
언제나 귀기울여주고
언제나 솔직하다...
십리벚꽃길 오른쪽편을 내려오는 계곡물.
쌍계사를 아우른 계곡이다..
비가 온 후 계곡을 내려오는 물의 기운은 힘차다.
바다에 익숙해졌던 눈이
녹음을 꿰뚫고 내려오는 민물에 맞춰진다.
짭조름한 바다내음 대신,
나무뿌리와 이끼를 아우르고 산에서 내려온
맹맹하지만 푸르름이 뭍어나는 민물내음.
지리산이 뿜어내는 기운의 정수.
 
 
관광철이 지나서 그런지
아니면 화개장터서 곧장 이어지는 길로 가는 나그네들이 더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흰 꽃을 떨군 후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벗어난 초록의 벚꽃나무는 여타 풍광과 다를 바 없어서 그런지...우리가 가는 길에는 인적이 드물다. 한 쌍의 남녀를 본 것 빼곤 걷는 나그네들은 없었고, 간혹 지나가는 자동차들. 우리도 차의 힘을 빌어 가는 길이었건만, 손붙잡고 내려가던 그네들의 뒷모습에 그저 부끄러웠다..그 옛날 젊었던 아부지와 하늘서 내려온 선녀같던[아부지 표현이다..] 어무이가 그네들과 같이 손붙잡고 내려왔던 길을, 수십 년이 흘러 우리가 올라간다.. 비록 그 선녀같이 곱던 여인은 오지 못했지만, 그 때 그 여인이 이 길 위에서 느꼈던 흥분은 여전히 살살 땅에서 올라온다....
 
 
 
 
  
 
 
 
 
 
 
 
^^;;언제찍었지..
여하튼 쌍계사 올라가는 초입에 서 있는 입석. 십리벚꽃길 끄트머리, 쌍계사 바로 앞에 있다. 거기 있는 유료주차장에 차를 대고 갔는데....어째 좀 뭔가가 이상하다(!) 했더니;;; =.= 화개장터서 곧장 올라왔다면, 무료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었던 것. 임시주차장이긴 했지만.....기분 참 묘...하더라. 쩝....뭐 할 수 없지 ^^;; 다른 사람들은 그 임시 주차장에 차를 대던데..우리는 아무도 없는 그 텅 빈 유료주차장에 차를 댔더니..약간 화가 났던게 사실이다 ^^ 솔직히 어느 누가 열받지 않으랴~! 그러나..그냥 좋은게 좋은거라고, 좋은 산수 구경왔으니 돈 내라는거 다 내고 올라가자~ 하야 쌍계사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쌍계사를 에워싼 또다른 계곡 위 다리를 건너며, 여러 음식점들이 늘어선 구비구비를 돌아, 이제 쌍계사 매표소다.....
 
 

 
 
 
매표소 바로 직전에 있는 음식점 출렁다리 위에서..
^^ 난 출렁다리는 무서워 하는지라 [덩치에 안 맞게;;;]
동생녀석이 대신 찍어왔다..
녀석. 일취월장하건만
왜 내 사진 찍어주는건 고모냥이냐고~ =.=+
 
 

 
이쪽도 어제 비가 많이 왔던가..
계곡을 훑고 내려가는 물줄기가 세차다.
 
 
 
 
 
 
 
 
 
 
 
이 사진은
아부지가 계곡 밑까지
내려가서 찍어온 사진.
 
남해바다와는
전혀 다른
내륙의 거죽이 내뿜는
짙푸름 녹음의 순박함
흰 포말이 자아내는
기운
우리 일행의 몸을
훑고 지나간다.
 
그래...
여긴 이제 지리산 자락.
백두대간의 정기가
천지를 감싸고 있는
땅의 정점이다..
 
 
 
 
매표소를 지나
서서히 올라가는
두 남자의 모습.
 
누가 부자 아니랄까봐
뒷모습도 닮았다 ^^
 
역시
관광객들이 별로 없어
우리끼리 재잘대며
장난치며 올라가는 길.
사방이 모두 우리를 위해
열려있는듯한 느낌.
 
지리산의 공기가 내려준
푸르른 공기로 감싸인 길.
 
촉촉히 젖은
우리의 발길을
생각보다는 붙잡지 않고
쉬엄쉬엄 갈 수 있는
매끄러움을 깔아준다.
 
 
 
 
 
 
 
 
쌍계사(雙磎寺)는 신라 성덕왕 21년(722년)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화상께서 선종(禪宗)의 六祖이신 혜능스님의 정상을 모시고 귀국, "지리산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 눈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 곳을 찾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

그 뒤 문성왕 2년(840년) 중국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 귀국하신 혜소 진감(眞鑑)선사께서 퇴락한 삼법스님의 절터에 옥천사(玉泉寺)라는 대가람을 중창하시어 선의 가르침과 범패(梵唄)를 널리 보급하시었으니 후에 나라에서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렸다. 그간에 벽암, 백암, 법훈, 만허, 용담, 고산스님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고색창연한 자태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쌍계사 일주문]
 
 
 
 

쌍계사는 국보 1점(진감국사 대공탑비-국보47호/이게 아마 대웅전 앞에 비스듬히 서 있던 걸꺼다), 보물 3점(대웅전-보물 500호, 쌍계사 부도-보물 380호, 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 925호) 의 국가지정 문화재와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청학루, 마애불, 명부전, 나한전 등의 많은 문화유산, 칠불암, 국사암등의 암자가 있으며, 조계종 25개 본사중 제13교구 본사이기도 하다.

쌍계사는 여러 문화재외에도 차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쌍계사 입구 근처에는 '차시배추원비(茶始培追遠碑)'가 있고, 화개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벚꽃길에도 '차시배지(茶始培地)' 기념비가 있다. 차는 신라 선덕여왕때 당나라에서 처음 들여왔는데 흥덕왕 3년(828년) 김대렴(金大簾)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줄기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김대렴이 차를 심은 이후 진감선사가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밭을 조성, 보급하였다고 한다.

현재 혜능대사의 정상이 모셔진 금당(金堂)에 금당선원이 있어 눈푸른 납자들의 정진이 이어지고 있으며 전통강원(傳統講院)과 금강계단(金剛戒壇)이 설치되어 바야흐로 선맥과 강맥, 그리고 율맥의 법통이 바로선 수행도량의 명성을 떨치고 있다.
 
                                               - 쌍계사 홈페이지 소개글 중..(http://www.ssanggyesa.net)
 
 
 
 
 
여행 전 쌍계사 홈페이지를 통해 이런저런 정보를 얻고 이것도 보고 저것도 봐야지~ 기대를 했건만..ㅠ.ㅜ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어쩜......사찰공사중이라니...ㅠ.ㅜ 그래도 아부지의 추억(!)이 서려있는 일주문부터 팔층석탑까지는 공사가 진행되지 않았는데..대웅전이 공사중이었다 ㅠ.,ㅜ 홈페이지의 사찰 전경을 보면서 대웅전을 정말 보고팠건만...ㅠ.ㅜ 아쉬운 마음에 그 옆에 있는 사찰내 박물관이라도 보고 가자..했건만..ㅠ.ㅜ 정말이지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스님들 수행기간이라 박물관 아래서부터 출입이 통제된다고라고라고라..ㅠ.ㅜ 보통때 수행기간엔 박물관까진 올라갈 수 있는 걸로 아는데, 사찰공사로 인한 소음때문인지 밑에서부터 통제를 하는 듯..어흑..어흑........
 
 
 
 
 
 
그래도..공사장을 피하고 또 피해서 경내를 돌아본다. 생각보다 사찰 경내로 들어가니 인부들 외에도 관광객들이 꽤 있더라...흠..공사중이라해도 유명한 절에는 항시 사람들이 모이는 법이로군... 흑...옆의 범종루도...대칭으로 서 있는 대웅전에서 멀찌감치 봤으면 더 멋졌을텐데....
 
........사찰의 보수를 위한 부득이한 공사였을텐데, 내 넋두리가 좀 심한가...그래도 ㅠ.ㅜ 진도의 쌍계사고 그렇고, 하동의 쌍계사도 그렇고! 두 쌍계사 모두 공사중이라니....ㅠ.ㅜ
 
 
 
 
그래도..그래도!!!!!!!!!
이 마애불상 뺨은 어루만지고 왔다!!!!! 공사가 한창 중인 대웅전 앞에 세워진 임시건물 옆에 보이지도 않은 길로 우리를 이끌고 간 흥분(!)한 아부지....아니 여기에 뭔 길이 있다고라고라....엇...
저 뒤에 대웅전 공사하는구나...기왓장을 저리 하나하나 쌓고 기둥도 저렇게....엥? 그거 보는게 아니라고..그럼..? 엇......엇?!!!
 
군입대를 앞둔 아부지가 친구분들과 한겨울의 지리산을 찾았다가 조난을 당해 천신만고 끝 3일만에 내려왔더니, 군부대에서 수색시작 바로 직전이라. 그 당시만해도 지리산 등반 시에는 산밑 군부대에 신고를 하고 올라가야 했다고. 3일동안 하산기록이 없으니 군부대 측에선 조난당했을거라 생각, 이제 막 수색을 하려고 노심초사하던 찰나! 20대 초반의 총각 세 명이(!) 부랑자가 다 돼서(!) 나타나니.....군 부대장이 울 아부지 일행들을 세워놓고 기합을 주었다고..=.=;;;;; 조난당한 것도 억울한데, 본의아니게 기합까지 받아버린 기운뻗치던(!) 청년 세 명이 하산하게 된 길이 바로 이 쌍계사를 통하는 길 [아마..불일계곡/불일폭포 쪽으로 하산했던 듯..] 씩씩대며 내려오다가, 절이 있길래 물 얻어먹으려고 들어왔는데..대웅전 바로 옆 바위에 새겨진 미소지은 마애불상. 괜한 심술이 난 울아부지.....불상 뺨을 한 대 퍽~~~~!!!! =.=;;;;;;;;; "네 이 놈~~~~"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주지스님의 불호령~! +.+ 걸음마 날 살려라~~~ 물도 못 얻어먹고 그대로 일주문까지 줄행랑~~!! 이 이야기를 십 수년간 귀가 닳도록 들어왔는데..이제 그 실체, 바로 그 뺨맞은 불쌍한(!) 마애불상을 보게 되었구나!!!!! 십 수년 만에 쌍계사에 찾아간 울 아부지..신났네~ 신났네 그려~ 우연히 마애불상을 보러 오신 중년의 부부분께 자기의 무용담을 신나게 '썰' 푸는데...그저 웃지요 ^^ 미니녀석은 원래 사찰구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좀 떨어져 있었지만, 아부지의 성화에 못 이겨 역시나 사진을 찍었다..쯧쯧......부처님...불초한 울 아부지를 용서해 주십시오...하면서 나도 한 번 스을쩍?! ^^ 에이~ 스님..난 쓰다듬어 줬당께롱~~~~~!!!
[그런데 참 희한한게..난 직접 이 마애불상을 보러갔을 때도....이렇게 사진을 찍고 있을 때도, 불상의 입가에 미소가 서려있는줄 알았다..=.= 찍고와서도 한참동안 불상의 미소를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이렇게 포스트 올리는 도중에야 알았다.."에.....에?? 얘(!) 안 웃고 있었어?? 그냥 일자입술이네 =.=;;;" ..............내 기억 속 쌍계사 마애불상은 틀/림/없/이 우리나라 특유의 둥글디 둥근 해학미 가득한 얼굴로 따스한 미소를 짓고 있었건만...~.~;;;; 나...마애불상한테 홀린거야? 그런거야??]
 
 
 
그런데...정말......아쉽게도!!!!! ㅠ.ㅜ 슬프게도!!!!!!!
오전 내내 여수 향일암에서 실컷 눌러대고, 경상남도로 넘어오는 길에서도 계속 눌러대고,
너무나도 멋진 우리나라 금수강산[<- 오~ 이 단어 정말 간만에 사용한다!!] 풍광을 디카에 담다보니.....ㅠ.ㅜ 마애불상에서 내가 찍은 저 사진을 마지막으로 디카의 배터리가 쫑났다...아/뿔/싸...
=.= 이를 워째..이를워째.. 다행히 일반카메라를 가져갔기에 망정이지..에휴....문제는, 일반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현상을 아직 못 했다는 것...ㅠ.ㅜ 사실..이날까지도 카메라가 괜찮았는데, 이런...이번여행은 카메라 수난시대...=.= 삼일 째 되던 날 일반카메라도 고장이 나버렸다...그 안에 들어가 있는 필름을 꺼낼 때 다른 필름들도 모두 맡긴다하야..아직까지도;;;도대체 언제쯤 일반카메라를 고치게 될까... 그래도 이왕 시작한 글...이 후로도 사진이 없어 아쉽지만 계속 이어나아가야겠지..
 
 
채 사진을 찍진 못했지만, 쌍계사 매표소를 지나서 처음 만나는 기념품 가계 옆쪽으로 난, 정말 분간키 어려운 길을 조금만 들어가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옛 기와집을 만나게 된다. 이건 뭔 건물일까..했더니, 쌍계산장이라고 그 예전 아부지랑 어무니 신혼시절에 와서 잤던 곳이란다. 옛 집에서 하룻밤 쌍계의 물소리를 들으며 쉬어갈 수 있는 운치있는 곳..+.+ 오오오오오~ 사실 진도에서 점심식사할 때 아부지가 미리 전화를 걸어 예약여부를 문의했는데, 방은 있지만 비가 많이 와서 천장이 새고 있다고..비가 그치면 어찌될런지 모르겠다고 하루 있다가 문의하라고 하시더라...~.~ 우워~ 천장에서 물 샌다~ 예전에도 물 받으며 잤던 기억이 있으니 그건 오히려 운치있다며 좋아할 텐데..문/제/는/ ..... 산속 옛집인지라.....언제 어디선가 나올지 모르는 벌레들...~.~;;;; "...벌레많아..?" "옛날 외갓집 기억나지? 그때 밥먹을 때 벌레 나왔던거..그정도는 돼.." ".........나 그냥 딴데 갈래..."  외갓집이 초가집이었던 시절, 어렸던 난 왜 저녁먹을 때 불을 몽땅 다 끄고 TV의 불빛에 의지해서 밥을 먹는지 몰랐다. 불을 켜줘켜줘 외손녀의 뗑깡에 불을 켜주신 외할매..허걱..........=.= 어둠에 싸여 보이지 않던 온갖 종류의 벌레들이 휘젖고 다니는 방....놀래서 불을 다시 껐는데, 어째서인지 밥은 다 먹었다. =.=;;;;;; 여하튼 그 때의 기억으로....운치보다는 내 마음의 안정을 택하기로 했다..흠흠..
 
 
이렇게 나름대로 신나게(!) 공사중인 쌍계사 경내를 둘러본 뒤 다시 나오는 길....아침인지 점심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는 해물된장찌개로 식사를 한 뒤..쌍계사 나올 때 시간 오후 4시까지 배가 썩 괜찮았는데...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어찌 섬진강 재첩국을 먹지 않고 갈 수 있으리오~~!!! 주차장 근처에 있는 어느 식당에 들어가 재첩국을 시켰다. 동상녀석은 이미 먹어본 적이 있다던데, 난....=.= TV서 본 것 밖에 없단 말야~!!!! 밍숭맹숭하다고 했던 것과는 달리, 재첩 특유의 짭짤한 맛이 생각보다 입에 착 달라붙는다. 그냥 희멀건 국에 파 송송 재첩 탁(!) 들어있는 국이건만........
^^;; 게다가 또 서울 생각해서..재첩이 좀 있다 말겠지..했는데...아무리 뜨고 또 뜨고, 퍼고 또 퍼도 계속 나오는 재첩... '=.= 니들 언제까지 나올거냐......' 국물에 밥 말아서 끝까지 다 먹을 동안 줄어들지 않는 재첩. 크기가 작긴 했지만...이야..아무리 재첩'국'이라지만 이리 많이 들어있을 줄 몰랐다~~~! 먹다가 배가 불러 본의아니게 눈물을 머금고 남겨야 했으니....아아아..생각보다 훠~~~얼씬 맛났던 섬진강 민물의 맛이여~~~~!! 나중에 가면 배불러 못 먹었던 은어요리도 필히 먹어보련다~!
 
 
오후 4시....
원래 이 날 계획은 쌍계사까지 본 후, 근처에서 숙박을 하기로 했던 것인데, 시간이 참 어중간..어떡할까..하다가 에라이~ 화엄사까지 가보자! 늦게 도착해서 못 들어가면 다음날 아침 일찍 가면 되니까! 하야 구례로 출발~~~~!!!! 우리는 다시 전라남도로 들어온 것이다 ^^
하루 새에 전라남도 서쪽 끄트머리에서 경상남도를 돌아 다시 전라남도로~
 
섬진강과 점점 멀어진다. 구례 화엄사로 들어가는 길은 강이 아닌 지리산 자락쪽으로 머리를 돌리며 강과의 거리를 늘려놨다. 아쉽지만...다시 한 번 산 속으로 파고든다.
해가 아직은 그 긴 꼬리를 내밀고 있는데, 어디선가 몰려든 낮은 구름들이 해를 가린다. 비가오려나......남은 길을 재촉하여 화엄사 초입에 다다랐다. 섬진강 물길과 헤어지고 오른쪽으로 돌아서부터 화엄사까지는 꽤나 긴 길. 역시나 혈기왕성할 20대 시절 이 곳을 찾았던 아부지의 추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이 길은.....그 예전 한밤중에 랜턴도 없이 친구들과 찾아갔던 길이었다고. 그 때야 차도 없었으니 엄청 걸었겠지만....그 때 동네 불량배들과의 초긴장 상태에까지 가면서 뛰어 도망댕겼던(!) 길을 이제 우리 가족은...편히 지나간다 ^^
 
 
화엄사 매표소 앞. 쌍계사도 그렇고, 화엄사도 그렇고 지리산 국립공원 입장료에 더해져서 사찰 입장료가 또 매겨진다...1인당 약 4000원에 가까운 입장료..=.=;;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끄응...내가 낸 돈들이 잘 쓰여지겠거니...란 생각을 해야지 뭐 어쩌겠어 ^^ 매표소 앞쪽에 주차장이 있건만, 도로는 앞으로 계속되고..여기에 차를 세워야할까 말까..매표소에서 막으면 차를 세우자..했는데, 매표소 직원이 그냥 들여보내준다...저 위에 또 주차장이 있겠거니..하야 올라가는 길. 그리 올라가진 않지만, 절 거의 다 가서 주차장이 하나 있더라..^^ 쌍계사에서의 일(!)이 있어서 그런지 왠지 반갑고 횡재한 기분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혹시나 몰라 우산을 들고 계곡물 소리에 귀기울이며 올라가는 길. 역시나 포장이 잘 되어 있어서 별로 산행이란 느낌이 안 들었다. [ ^^ 문득 또 movie 양이 떠오르네... ] 살짝 비가 적신 아스파트 길은 시원했고, 오른쪽으로 휘돌아 나가는 계곡 물줄기의 흰 물거품 역시 반짝였다...왼편으로 이제 절간의 담이 이어지고, 곧 일주문이 나온다.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있는 화엄사는 544년(백제 성왕 22년)에 인도에서 온 연기 조사가 창건하였다하며 절의 이름은 화엄경(華嚴經)의 화엄 두글자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해회당(海會堂)과 대웅상적광전(大雄常寂光殿)만 세워졌고 그후 643년(선덕여왕 12년) 자장율사에 의해 증축되었고 875년(신라 헌강왕 1년)에 도선국사가 또다시 증축하였으나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30년(인조 8년)에 벽암선사가 절을 다시 세우기 시작하여 7년만인 인조 14년(1636) 완성 하였다.

사찰내에는 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5점, 천연기념물 1점, 지방문화재 2점등 많은 문화재와 20여동의 부속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건물의 배치에 있어서는 일주문을 지나 약 30°로 꺽어서 북동쪽으로 들어가면 금강역사(金剛力士), 문수(文殊), 보현(普賢)의 상을 안치한 천왕문에 다다르는데 이문은 금강문과는 서쪽방향으로 벗겨놓는데 독특한 특징이다.

지리산은 말이없고, 칠불도 또한 설함도 없네,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것도 없으니,
무심이랴야 백운과 함께 하리라.


이 천왕문을 지나 다시 올라가면 보제루(普濟樓)에 이르고 이 보제루는 다른절에서는 그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에 이르는 방법과는 달리 루의 옆을 돌아가게 되어 있다. 절내에는 동·서 두 개의 탑이 사선방향으로 보이며 동측탑의 윗부분 보다 한단높은 더위에 대웅전이 있고 서쪽탑의 윗부분에는 각황전이 위치하고 있다.
                                   - 구례 화엄사 홈페이지 소개글에서...[ http://www.hwaeomsa.org ]
 
 
일주문 앞에서 일반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간만에 화엄사를 본 아부지 얼굴은 연신 웃음 만발이다. 예전 친구분들과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시는 듯.... 사찰구경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동생녀석도 어딘가 고즈넉하며 뭔가 다른 느낌을 주는 절 초입부터 관심을 내보인다.. 두근두근 들뜬 마음을 안고 일주문 안으로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여타 사찰과 다른 느낌...어...길이 일직선이 아니라 왼편으로 돌아가네..? 대웅전도 약간 왼편으로 치우쳐져 있고... 위 경내 이미지만을 보아선 잘 알 수 없지만, 약간 상식을 벗어난 화엄사 경내의 가람배치에 적잖이 놀랐다...오호라~ 뭔가 뜻이 있나 보군..
 
 
엄사의 가람배치는 화엄법계의 연화장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보통의 사찰은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일직선상으로 되어 있지만 화엄사는 불이문ㆍ금강문ㆍ천왕문이 태극의 형상을 이루고 있으며, 보제루ㆍ운고각으로부터 대웅전에 이르기까지 또 하나의 태극형상을 이루고 있다.

첫 번째의 태극은 세간법을 비유한 것이며,
두 번째의 태극은 출세간법을 비유한 것이다.

화엄사의 경관은 변화가 있는 가운데 조화를 이룬 훌륭하고 특이한 공간미학을 지니고 있다.
 
                                                                            - 역시나 화엄사 홈페이지 설명 중에서...
 
약간은 늦은 오후였지만 사찰 경내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역시나 유명한 사찰이긴 하나보다...하면서 경내를 돌아보려는 중....보제루 오른편을 돌아 사찰의 큰마당으로 들어가니...양 측에 석탑이 있고 한칸 올려져 바로 앞쪽엔 대웅전이, 그리고 왼편에 크나큰 목제건물이 보인다..아 저게 각황전이구나....+.+ 디카가 없는게 어찌나 원망스러웠던지.... 대웅전보다 더 큰 위용을 자랑하는 각황전...국보 67호던가....각황전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는데, 계단 바로 밑에 약수대가 있어서 간단히 목을 축이다가..보제루에 눈이 갔다. 저긴 뭐 하는 곳일까나..하고 봤더니 박물관처럼 꾸며놓은 곳이었다. 홈페이지 글에서는 법요의식을 하는 곳이라고 알고 갔는데...오오오오~ +.+ 화엄사 내 각종 문화유적에 대한 설명글을 볼 수 있는 곳. 동상녀석은 이미 저 앞으로 혼자 구경하러 간 상태라, 아부지랑 나만 등산화 풀고 들어가서 보는데....어느 스님 한 분이 조용히 올라오시더라...같이 구경을 하는 분위기가..은근히 오묘해지면서...^^ 기분이 꽤 좋았다. 특히 국보인 탱화의 복사본과 신라시대부터 발견된 문건 및 유물의 복사본이 전시되어 있는데 [진본은..아니겠지. 만약 진본이면..=.= 너무 보안이 허술한걸...]고찰의 오랜 나무냄새가 느껴지는 듯....우리보다 앞서 스님이 보시게끔 아부지랑 난 좀 더 뒤에서 보고 있었는데, 나올때 보니 어느덧 다른 사람들도 우리 뒤를 좇고 있더라...
 
아쉬운대로..화엄사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이미지들로 대신해야겠다.. 대웅전과 원통전을 지나 각황전 앞에 섰다. +.+ 국사교과서나 기타 서적을 통해 간간이 접해왔던 각황전이다...이야~~~ 그냥 종이 위 프린트된 글이나 그림만을 통해서 접했던 곳을 직접 보게 될 때의 느낌이 사뭇 살갑다...이런 반가움이라니~~~! 만약 수학여행 정도로 이 곳을 방문했다면 이런 느낌을 받진 못했으리오...책에서 죽어있던 문화재가 내 눈 앞에 살아 숨쉬고 있다는 느낌은 정말 색다르다. 이런 실제 경험을 쌓으며 공부할 수 있다면 오죽 좋으련만....^^;; 서울과 구례는 너무 멀다. 여하튼. 각황전의 위용은 정말..그 앞에 바로 서 봐야 안다. 대웅전보다 큰 건물은 정말 그 위용은 장관이다. 각황覺이란 '부처님을 깨달은 왕' 혹은 '임금님을 일깨워 중건하다'란 뜻이라고. 원래 장육전이란 이름이었으나, 정유재란 때 소실되고, 조선조 숙종 대에 이르러 중건되었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화엄사 홈페이지를 보시길...^^ 재미난 이야기도 많이 있소이다..] 세월이 숨막히도록 느껴지는 기와나 단청, 기둥 들의 면모 하나하나가 그 큰 크기에도 불구, 압박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그저 고요히 담담하니 누워있는 불상을 연상시키는 곳. 바로 그 앞에 석등이 하나 서 있다....
 
역시나 국보 12호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등이라고.. 각황전의 위용만큼이나 이 석등의 위용에도 감탄사만이 나올 뿐... 정말이지 이렇게 큰 석등은 처음 봤다!!!!!! 잘 나올런지 몰라도 계속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긴 했는데..^^ 제발 잘 나왔기를... 신라 문무왕 17년, 그러니까 677년에 의상대사가 세운 석탑이라고 하니...그 나이가 무려 1330살 가까우니!!! +.+ 그 오랜 세월을 이 지리산 한 자락에 서서 말끔히 이겨낸 이 석등이 대견스레 보이는건..너무 건방진 언사일까..^^ 3천 년에 한번 씩 핀다는 우담바라 꽃을 본따 만들었다는 이 석등. 한 번 만져보고픈게 본심이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의 보물이니 때 탄 내 손길에 잘 못 되면 워쩌랴..[어차피 주변에 울타리가 쳐 있어서 별 걱정 안 해도 된다. ^^] 어둑어둑해지는 늦은 오후에 가서인지..저 석등에 불을 밝혀보면 어떤 느낌일까....정말정말 궁금하기도 하고....여건만 된다면 한 번 불을 켜보고 싶기도...^^
 
석등을 돌아 각황전 내부를 본다.....3층 높이의 건물답게 그 안의 위용도 대단하다. ㅠ.ㅜ 디카 배터리가 없는게 다시금 한스럽다... 각황전 안에는 3불 4보살 에에..그러니까...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보현보살, 문수보살, 다보여래, 지적보살.....이 있는건 알고 갔는데;;; =.=;; 어느 분이 뉘신지 까진....헷갈린다..@.@ 유일하게 가운데에 뫼신 석가모니 불만은 알아뵈겠다...손가락을 든 항마촉지인...그런데 구품인을 하신 두 불상은..=.=;;어느 분이 아미타여래시고, 어느분이 다보여래신지까지는..흑 대학교때 한국미술 시간에 배웠건만 그새 다 까먹었다...하긴 7년이 넘었으니;;;; 이 모든 불상들이 목조라니..~.~ 각황전을 중건한 것이 조선 숙종때였으니, 이 불상들도 그 즈음하여 뫼셔진 것일테지?? 그렇다고 해도 약 300년 가까운 세월을 이겨낸 고찰의 목조불상들이라... 고즈넉한 분위기가 내리깔린 화엄사의 명전에 모셔진 불상이어서 그런지....크나큰 불상에서 풍겨져오는 경외감이 사뭇 마음을 경건하게 만든다 +.+ 이런 기분..정말 간만이다.
그 경외감을 불러일으킨 것 중 하나가 커다란 불상 뒤에 걸려진 엄청난 탱화다.. 탱화..티벳에 갔을 때 탱화를 햇볕에 말리는 행사에 대해 봤던 게 기억난다... 내 설명보다는 홈피의 설명이 더 낫겠다 ^^
 
높이는 13m, 폭은 8m인 괘불은 마(麻) 바탕에 채색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로서 효종 4년(1653) 5월에 지영ㆍ탄계ㆍ도우스님 등이 조성하였다. 거대한 규모이면서 짜임새있는 구도, 균형잡힌 형태, 치밀한 선등이 17세기 중엽의 뛰어난 불화임을 알게 한다. 전체적 화면구성은 석가모니불과 문수․보현 보살을 중심으로한 삼존형식으로 10대 제자와 사천왕이 호위하고 있다. 이 불화는 밝고 화사한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영산회상의 진리로 가득한 환희의 세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

※ 괘불은 국가에 천재지변이 생겼을 때나 기우제(祈雨 祭), 영산재(靈山齋), 예수재(豫修齋),수 륙재(水陸齋)같은 것을 행하기 위해 신도들이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할 때 모시는 신앙의 대상물이다.

티베트는 괘불을 당카라고 부르며 석가탄신일,성도일,열반일에 큰 축제을 열고 이 때 당카를 내어 모시고 소원을 빌거나 예배를 드린다. 연중 행사로 내어 모시는 것을 ‘거불(巨佛) 햇볕쬐기’ 라고 하며, 부처님이 현세에 나타나서 고통을 덜어 주는 날이라고 믿고 있다.
 
                                                                  - 역시나 화엄사 홈페이지 괘불탱화 설명글에서..
 
이제까지 수업을 통해서나, 개별적인 답사를 통해서 사찰들의 탱화를 꽤 봤다고 생각했는데..이렇게 교과서에 실려있는 화엄사 탱화를 보니...그 위압감은 정말 대단하다!! +.+ 이야~~~~ 꽤나 오래된 탱화인데도 [....촛불에 비춰져 그렇게 보인걸까..? ^^;;] 화려한 색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단순한 구도임에도 경건함이 마구마구마구 내리쬐는 탱화...이야~~ 멋/지/다.. @.@ 이건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그 큰 탱화를 제작한 사람들의 노력과 땀과 시간이 시각적 충격으로 한가득 들어오는 황홀한 광경.....화엄사가 왜 그리 유명한지, 그리고 유물들이 어째서 '나라의 보배'가 되었는지 재삼 깨닫는 순간이다...
 
각황전 왼편으로 산쪽으로 나 있는 자그마한 계단이 있다. 올라갈까말까...한 5초 고민하다가 올라가기로 결정. 역시나(!) 생각보다 안 올라간다 ^^;; 한 30여 개 정도의 돌계단을 올라갔을까..오른쪽으로 길이 돌면서 탑 하나가 빼꼼히 눈에 들어온다. 화엄사의 또 하나의 보배, 4사자 3층 석탑이다.
 
4사자3층석탑
은 화엄사의 창건주인 연기조사와 어머니의 전설을 담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14년(645)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불사리 73과를 모셔와 연기조사의 공덕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탑으로 불사리 공양탑이라고 한다.

전체적인 탑모양은 연기조사께서 편단우견 우슬착지한 자세로 머리에 석등을 이고 있는데, 왼손으로 찻잔을 들고 찻잔 위에 여의주를 받쳐 어머니에게는 진리를 공양하고 부처님에게는 차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하고 있어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닌(不二)의 경지를 느끼게 해준다.

수행자에게는 용맹정진과 반야의 힘을, 불효자에게는 효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이 쌍탑은 능숙한 기법과 균제된 조형미를 지닌 신앙의 결정체로서 불국사의 다보탑과 더불어 통일신라 석탑예술의 극치로 평가받고 있다.
                                                - 역시나 화엄사 홈페이지 설명중에서...
 
화엄사의 설립유래까진 알아보지 못하고 갔는데, 그런 이야기가 숨어 있더라....확실히 3층 석탑을 받치고 있는 네 마리 돌사자의 모습도 인상깊었지만,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스님 한 분의 모습이 참..독특하였건만...^^ 게다가 더 희한(!) 했던 건....설명에는 나오지 않았는데, 이 탑에서 각황전 쪽으로 또 다른 스님석상이 하나 마주보고 있는 점. 좀 의아한게....위 사진에서는 나오지 않아서 좀;;;그런데 우리가 갔을 때는 뭔가 증축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여하튼, 3층 석탑 내의 연기선사 석상을 보고 있는 듯한 또다른 석상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아쉽다 ^^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길래......하면서 둘레둘레 돌아보며 아부지랑 얘기하는데, 저 편에서 동생녀석이 우리를 부른다. 동생 옆에는 또다른 일행의 어린 아이들이 말똥말똥 무언가를 보고있다. 뭔데그랴?? 이것봐봐~ 어어어..엄청 큰 두꺼비네~~!!!!! +.+ 섬진강가에서 보지 못한 두꺼비를 구례땅 화엄사에서 보고 가게 될 줄이야~! 두꺼비 녀석은 우리를 경계한다기 보다는...우리를 사뭇 귀찮아 하는 듯한 눈빛(!)으로...슬슬 기어가다가 멈추기를 반복. 우리가 석탑을 내려올 때 되어서야 숲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에게 뭔가 할 이야기라도 있었던 것일까나....
 
 
8월 81암자의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던 화엄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때 많이 소실되었다고. 그 후에 중건된 곳이 이날 우리가 가 본 화엄사다. +.+ 중건된 곳만 해도 이리 넓은데 예전은 오죽 대단했으랴~~~~~!!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어 아쉽게도 천연기념물인 올벚꽃나무가 있는 곳이나 더 뒤에있는 지장암 등등은 가보지 못했다. =.=;; 그쪽은 경내에서 한참 더 들어가야 한다고 하니.. 하늘에 드리워진 노을이 서서히 화엄사를 둘러싼 숲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할 때....약간은 어두워진 화엄사를 떠난다.  언제고...아빠처럼 먼 훗날 즐거운 추억을 안고 다시 찾아올 날이 있겠지....벌써부터 그 언젠가가 기대된다.....
 
 
아침부터 서둘러서 그런지 다행히 일찍 오늘 일정을 마무리 지은 듯... 6시 경 지리산을 뒤로 한다. 다음날  일정은 담양 근처서 시작해야 하는 바.....역시나 오늘도 다음날의 일정에 조금이나마 일조코자 길을 더 가기로 했다 그런데!!!!!
=.= 네비게이션의 업데이트를 안했더니만.....구례부터 곡성을 거쳐 옥과까지 가기로 한 길이 이리도 멀 줄이야!!!!! 일반 지방도를 찾아 돌고돌고 또 돌고...~.~;; 여기 길 있는거 맞아..? 할정도로 구비구비구비 어제와 다름없이 가로등도 없는 길을 계속 간다. 운전하는 아부지나 옆에서 보좌하는 동생녀석이야 신경쓰느라 괴로웠겠지만....~.~;;;뒷좌석의 나는 이제는 오른쪽에 보이는 섬진강 상류길의 늦은 오후 풍경보니라 신났지 뭐....[번갈아가면서 운전을 하면 좋았으련만...하필이면 가져간 차가..아부지 혼자밖에 운전할 수 없는 C모 브랜드의 차였기에.....운전을 꽤 하는 동생녀석도 못 모는 차니 난 말할것도 없지..쩝...]
 
어두운 산그늘을 돌고돌아 곡성에 도착했다. 88고속도로를 탈까..하다가 곡성에서 할머니 고향인 옥과까지 그닥 멀지 않다는 말에 그냥 일반도로를 타려고 이정표를 보며 가는데...~.~ 곡성에서부터 88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까지 너무 먼게 아닌가..싶을 정도로 꽤 많이 떨어져 있더라. 옥과에서 보면 톨게이트가 정말 금방이던데...여하튼 우여곡절, 천신만고끝에 도착한 곡성을 뒤로하고...그냥 옥과까지 가기로 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늦지 않은 저녁 8시 정도. 옥과에 도착해서 저녁을 하면 되겠다..[=.= 위에서도 계속 말했지만....아점에 늦은 점심으로 배는 절대 꺼지지 않았다. 게다가 재첩국 먹고 나오면서 발견한 구멍가게에 '녹차뻥튀기'가 있길래 그거 하나 사서 입심심치 않게 왔던 길인지라....(2000원 짜리가 엄청 양이 많아서 다음날 남원 가서야 다 먹었다..+.+)]
 
다시 지방도를 돌고 돌아 옥과에 도착~! 할머니 고향이기도 하고 어렸을 적에 와본적이 있기도하야 낯설지만은 않은 곳이긴 하지만..너무 오랫만에 그것도 늦은 시간에 도착해보니, 어렸을 적엔 꽤 컸던 곳이 역시나(!) 작더라..^^;;;친척분께 연락을 하야 숙박을 정하고 식사하러 나와서 육회비빔밥이란걸 처음 먹어봤다~! 물론...난 소주와 같이 먹으면서 속풀기 좋게(!) 육개장을 시켰는데, 미니녀석이 좋아라~ 하며 시킨걸 먹어봤는데...생각보다는 비릿하지 않고 맛났다. 여행의 이튿날도 별탈없이 끝내고 가족끼리 술 한잔 기울이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서울을 떠난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상당히 오래된 듯 한 느낌. 아침일찍 일어나 9시까지 돌아다니고 있지만 그닥 피곤하지 않은 느낌...해외 배낭여행을 할 때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긴장의 연속이었지만.....이번 여행도 긴장에 긴장이지만서도 '같은 말을 쓰는 내 나라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어서 그런지 상당히 부담이 없다. 내 나라의 길과 내 나라의 땅과 내 나라의 공기를 마시는 일은 이렇게 또 색다른 경험이다. 어렸을 적에(!) 친구들과 돌아다녔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
 
 
숙소로 돌아와 오늘 찍은 디카사진을 노트북에 옮겨놓는다. 정말 많더라..^^ 그만큼 나의, 우리 가족의 오늘이 사진속에 고스란히 담긴다. 다시 올 수 있는 곳들이겠지만, 이 시간은 사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언제 다시 보더라도 이 때, 아부지와 동상녀석과 같이 숨쉬고 웃었던 이 때를 잊지 말자.......
 
 
그리고 이제.....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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