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9일 금요일

남도여행 첫날 (2) - 진도 : 진도대교 ~ 운림산방 , 쌍계사


 

진도 珍島.

남해의 보배라는

그 이름 그대로

내 눈속에 보배처럼

박혀버린 곳.

아파트로 이사오기 전

10여년 넘게 마당서

같이 뛰돌던 진돗개, 광자가 바로 연상되는 곳.

이순신의 울분과

그 울분을 보듬어 주었던 울돌목의 울음을 들을 수 있는 곳.

 그 땅에

이제 내가 섰다.

 


사실 진도대교가 그렇게 짧을 줄 몰랐다. 드디어 도착했다는 기쁨에 들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육지에서 진도로 넘어와 있더라...이렇게 좁으니 그때 그렇게 적을 물리칠 수 있었겠구나..그럼 물살은??

이미 건너와버려 더이상 가까이 갈 순 없었지만, 멀리서 보는 울돌목의 물살은 정말 대단했다. 단순히 '세다'라고 표현하는건 그 강도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할 터. 칼날의 날카로움과 같은 날선 소용돌이의 울음은 서슬퍼랬다. 그렇구나..그래서 여기가 울돌목이구나....그래서 그가 여기서 칼을 세우고 적을 기다렸구나...

 

진도의 첫 관문은 그렇게 슬프도록 무서운 울음을 터뜨리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섬'이라 하면 사방 바다를 한 눈에 에둘러 볼 수 있는 곳이라 무의식적으로 생각해버린 나에게 진도란 곳은 섬이 아닌 육지였다. 진도대교를 지나 첫 목적지인 운림산방을 향해 가는 길은 내가 지금 섬 안에 있는지 육지에 있는지 착각할 정도로 꽤 높은 과 논밭의 연속. '진도가 정말 크긴 크구나...저수지도 많고...' 수 년동안 서울의 풍광에만 익숙한 나였기에 진도의 내륙'성'은 생각보다 충격적으로, 그리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진도로 들어오니 빗줄기가 거세졌다. 들뜬 마음은, 그러나 빗줄기가 무섭지 않았다.

네비게이션과 GPS에만 의존하여 진도 "운림산방"을 찾아가는 길.  안내표시판과 지도만으로 찾는 길은 생각보단 쉽지 않았다. 게다가 중간에 내 실수로(!) 표지판을 잘 못 봐버려 돌아가기도;;;;;

 

비가 더욱 굵어졌으나 이제 도착했다.

첨찰산을 깃봉으로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에 아침 저녁으로 연무가 구름숲을 이루는 곳 -  운림산방 雲林山房 이다.

이곳은 조선조 남화의 대가인 소치小痴  허유 許維가 말년을 보낸 곳이라 한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저 연못의 가운데 동그란 섬의 백일홍은 바로 소치 선생이 직접 심은 나무라고. '소치'란 호는 중국의 유명한 화가인 '대치' 황공망의 호를 따서 추사 김정희가 지어준 것이라 한다. 소치...란 한자를 접하곤 나름대로 생각에 잠겼는데.....호를 얻은 연유를 알게되고선....좀 아쉬운 감이 생긴다...
 
 
 
 
 
 
비가 이리도 많이 왔지만.....
우리 일행 외에 두어 팀 밖에 없는
산방 내의 풍치는
가히 무릉도원에 비견할만 하리라.
산머리에 봉화를 품고 있다는
첨찰산의 산세가 에둘러 감싸안은 곳.
...언젠가 나의 시간에도
이런 곳에서의 머뭄이 허용될 수 있을까..
적막한 산과 하늘이 뱉어내는
물의 울음소리가 애처롭다. 
 
도착해서 그 앞의 설명을 보고서야 알게되었는데, 이 연못에서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촬영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떠날 즈음 비가 더욱 더 세차졌는데도 불구, 일군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연못을 보며 탄성을 내지르며
삼삼오오 앞머리를 따라가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만난
'유행'의 일부분.
 
 
 
연못을 돌아 말년의 소치가 기거했다는 초가집으로 통하는 길.
관광지로 이기에 깔끔하니 가꿔져 있었지만
어딘가 외갓집을 연상시키는 묘한 접점이 있었다...
 
외할매 치맛자락에서 나던
야릇한 풀내음
코를 스쳐 지나간다..
 
..비가와서일까..?
이 먼 남도땅에서
외할매의 기척을
느끼게 된 것은...
 
 
 
 
이번 여행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바로 동생녀석의 미소다.
휴일에도 술마시는 약속이 아니면 뒷동네 수락산 가자는 말도 14층 아파트에서 홱 던져버릴 녀석이건만......
 
여행 준비하면서도 힘쓰는 일은 모두 녀석의 몫이었기에 좀 미안한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내심 저 녀석도 여행길이 즐거운 모양이다. 말은 안하고 아직까지는 뚱한 표정이 얼굴에서 떼어지지 않건만 노래를 흥얼거리든가, 사진찍어달라고 포즈를 잡는 모냥새가 영낙없는 어릴 때 개구쟁이의 모습이다......이제보니 너도 그 어릴적 창경'원' 담벼락에서 내게 놀림당하던 바가지머리 4살박이 꼬마가 아니구나..
피엉킴의 인연으로 만난 너와 내 인연이 이리 오래되었지만, 네 해맑고 천진한 미소를 보는건 정말 오랫만인듯 하다.. 항상은 아니더래도 이번 여행에서 보여줬던 미소를 종종 보여주지 않으련....
 
 
 
사견이 너무 길다...;;
운림산방은 아기자기한 맛으로 많은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곳이긴 하지만 산방 자체는 생각보다 작다. 소치가 머물렀다는 초당과 그 뒤의 사당, 그리고 멋드러진 연못을 보면 산방을 다 둘러본 것. 물론 그 뒤로 쌍계사와 너른 상록수림이 있긴 하지만....한켠에 세워져 있는 소치 집안의 박물관도 놓치지 말자. 4대에 걸쳐 화가로 활약하고 있는 소치 집안의 진귀하고 담백한 수묵화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소치 - 미산 - 남농 -  임전 능 4대에 걸친 한국남화의 주요 작품을 전시한 소치기념관은 운림산방에 걸맞는 전시관이라 생각되지만....그 옆에 있는 진도역사관은.....넓은 부지때문에 이곳에 건립이 결정되었다는 건 예상할 수 있지만서도, 어째 운림산방과 그닥 구색이 맞아 보이진 않았다. 물론 생각보다 박물관 자체는 괜찮다. =.= 내가 별로 기대를 하고 둘러보지 않아서일까..?? 그정도면 뭐...진도의 역사와 여러 명승고적에 대한 설명도 보기 쉬웠고, 특히 수많은 죄인의 유배지로서 다양한 유배방법에 대한 설명을 따로 한 구역을 정해 몰아놓은 점도 꽤 색다르게 보였다. [묘한 인연으로...여행다녀온 그 주 일요일 아침의 퀴즈프로그램에서 최종 문제의 답이 바로 이 박물관에서 봤던 '위리안치 圍籬安置' 즉 집 주위에 가시 울타리를 치는 것이었다! 그 외에 가시덤불을 세우고 그 안에 죄인을 가두는 '가극안치 加棘安置', 외딴 섬에 홀로 고독하게 살게 하는 '절도안치 絶島安置' 등이 있다고 한다...+.+ 지식의 습득~!] 흠...결론은 한 번은 볼만하다는 겐가...~.~;;

 



























=.= 상당히 민망하지만...박물관에서 나와 운림산방 옆에 있다는 쌍계사 가기 전 다시 지나가게 된 연못 앞에서 한 장. 이때되니 빗줄기가 갑자기 거세져 바지가 온통 젖어 버렸지만....뭐 어떠랴~ 빨면되지~ ..........내 한 몸 뉘일 수 있는 곳 앞에 저런 연못 하나..가질 수 있을 날이 오려나...
 
 
 
운림산방 바로 옆에 있는
첨찰산 쌍계사 입구.
저 멀리 가로수에 에워싸인
사찰 초입이 꽤나 멋져 보인다.
 
운림산방을 목표로 하여 이정표를 보고 찾아가다 보면 운림산방보다 더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이 쌍계사 일주문이더라. 일주문 바로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른쪽으로 난 포장도로를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30미터 정도만 걸어가면 운림산방 매표소. ^^
쌍계사를 먼저 갈 것이냐...운림산방을 먼저 갈 것이냐...기로에 있던 우리들은 100여 미터만 가면 쌍계사고 바로 옆이 운림산방이라는 주차장 옆 가게 아저씨의 말에 첫 목적지였던 운림산방부터 돌아본 뒤 쌍계사로 접어들었다.
[물건도 안 샀는데...너무나도 상세히(!) 가르쳐 주신 아저씨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__)]
 
 
 
 
양 옆으로 계곡을 끼고 들어선 절이라 하여 이름이 붙여진 '첨찰산'의 이 쌍계사는 [첨찰산 이라고 지명을 붙인 건 다음날 우리가 가는 곳이 '또다른' 쌍계사가 있기 때문에..^~^] 신라의 고승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진도군청 홈페이지를 통해 사찰의 규모는 예견하고 갔건만 [작고 아담하니 이뻐 보이는 절이었다....] ㅠ.ㅜ 절이 공사중일거라는건 몰랐다고..... 사천왕상이 있을 법한 해탈문에서부터 썰렁한 사찰 경내.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니 을씨년함으로 변해버린 분위기...운림산방을 기대하고 갔기에 쌍계사는 시간이 허락하면 들리리라 마음의 여유를 갖고 갔건만..........비가 쏟아지더라도 공사만 하지 않았으면 더 없이 좋았으리라. 첨찰산 올라가는 등산길을 끼고 쌍계사와 운림산방을 아우른 상록수림은 비를 머금고 그 초록의 향연을 한층 짙게 뱉어냈다.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절의 고즈넉함에 머쓱해져 오래 둘러보진 못하고 나와버렸지만...(미니 녀석이 절 입구서부터 안 들어간다고 하야;;;) 상록수림의 나무 내음은 꽤 깊이 새겨졌다.. 



쌍계사 나가는 길목의 가로수 아래에서..푸른 나뭇잎과 우산의 빨간 색 가운데 동생 미니. 그리고..
비가 세찼지만 내리꽂는 낙우의 날카로움을 잊게 만드는 녀석의 환한 미소.
짜식.......그렇게 웃으라니깐~!!
 
 
정오 이전에 진도에 들어와 진도 운림산방에서 막바지 오전을 보낸 후,
우리는 다시 길에 나섰다.
남도의 짭조름한 바다 내음과 조우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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