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2일 월요일

남도여행 마지막날 (1) : 창평 -> 담양 소쇄원 [瀟灑園]

대한민국/전라남도


바다내음
이 그리워

떠나왔던 길...

바다와 헤어져

지리산 자락을 따라

섬진강 물소리 따라

올라가는 길...

 

이제 그 길의

끝자락이 보인다..

 

8월 26일

옥과에서 열린 새 날의 아침은

우리의 걸음을 창평으로 이끈다..

 

 

 

옥과의 새벽을 헤치며

마을을 둘러본다.

여기는

할머니가 나셨던 동네.

대나무숲의 시원한 소리가 아침을 채우는 곳.

 

그리고 그곳에서 조금만 가면 아부지가 태어난 곳,

창평이다.

 

아부지 기억속의 창평과 이날 우리가 접한 창평은 많이 다른 듯하다.

상기한 아부지 표정속에서 바뀐 고장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이 스쳐 지나간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듯
길가에 핀 꽃들의 색이
가을을 느끼게 한다.
 
아부지 기억 속에서
엄청 컸던 창평 고향땅.
자신의 아이들과 같이
다시 찾은 고향땅은
아부지에겐 특별하다.
 
그런 아부지의 분위기에
우리도 기분이 들뜬다.
아침 시간인지라
학교가는 학생들,
점포를 여는 상인들,
논에서 돌아오는 사람들,
하루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
국밥과 엿으로도
유명하다는 곳.
길가에 이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아침 이슬에
살짝 머리조아리던 곳.
그곳이 아부지의 고향,
이젠 돌아가신 할매할배가
 신혼을 보내셨던 곳,
창평이다...
 
  
 
아부지가 태어났던 집은 이미 오래전 없어져 자취를 찾기 힘들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길을 재촉하니...생각보다 창평서 멀지 않은 곳. 여행시작 전 지도를 보시던 아부지가 "이 근처까지 갔는데 여길 안 가보면 안 돼지. 언젠가 니들 데리구 가보고 싶었던 곳이야.." 했던 그 곳.
  
조선의 선비가 거닐던 곳
담양 소쇄원[瀟灑園]이다.
   
[소쇄원 주변 새단장과 관련하여 주차비 및 입장료에 대해 말들이 많은 걸로 압니다만...그냥 순수하니 소쇄원을 즐기고 온 사람이니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사양합니다. 또 소쇄원이 좁다는 분들도 있던데..=.= 이것저것 같이 있어서 커 보이는 진도 운림선방과 비교해서 그리 작은 곳은 아닌듯 하더이다. 그리고 운림선방의 입장료는 2000원, 소쇄원의 입장료는 1000원이요... 어떤 일이든 상대적인 것이니... ]  
 
 
 
 
 
 
 
 
 
소쇄원 입구.
 
살며시 돌아가는 굴곡
 살갑다.
 
양쪽은 감싼
대나무의 그림자
시원하다.
 
대나무 그림자가 연주하는
 바람의 노래는 싱그럽다.
 
여행계획 전
소쇄원에 대해 찾다가
어느 분이 이 곳을 찍은 걸 보고선 단번에 반했던 곳.
 
소쇄원은 입구에서부터
이토록이나 사람을
끌어당기나보다.
 
 
 
 
 

구비를 돌아가면, 오른편의 마을과 왼편의 소쇄원을 가르는
"대문없는" 흙담이 보인다...
소쇄원이다..
 
 
소쇄[瀟灑]란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소쇄하다'의 어근으로
'상쾌하다' , '산뜻하고 깨끗하다'란 뜻을 지닌 단어로,
풀이하면
'어떤 지경에 도는 기운이 맑고 깨끗함' 지칭한다고.

열린 공간이 주는 개방감...
'열림'이 시원하다.
 

구비를 돌아..왼편으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그 건너편에 '옛 선비들이 거닐던' 소쇄원 정자들이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흙담 옆에 있던 자그마한 정자, 대봉대[待鳳臺]
계곡 바로 위에 세워져 있어서
계곡물을 벗삼아 목축이고 가기 딱 좋은 곳..
운치가 그만이다..
 
 

흙담을 주욱 따라가면 만날 수 있는 글귀.
"소쇄처사양공지려[瀟灑處士 梁公之廬]"
우암 송시열의 글씨라 한다..
 
소쇄원은 조광조 휘하에서 수학을 하다 사화에 연루되어 스승이 죽자, 이에 귀향하여 처사의 삶을 살았던 "양산보"라는 선비의 개인 정원이다.  이제는 정말 보기 드믄 한국 민간 정원의 원형을 간직한 곳으로, 건축학 적으로도 자연 속에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공존하는 한국 건축물의 전통을 볼 수 있는 곳... 1000여 평의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중국의 너른 정원에 뜨악하고, 일본의 인공적인 정원에 그닥 정이 가지 않은 본인에게 이 곳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 가운데에서 아부지도 그렇고 우리 일행이 가장 보고싶었던 것은 바로.....
 

이 곳...
마을과 소쇄원의 경계를 쳐주는 담장이 계곡을 만나자 이렇게 되었다...
 
 
 
이리 뵈니 수량이 그닥
많아 보이지 않네;;;
그러나 수량은 꽤나
많았는데..어째 사진에는 잘 나타나지 않은 듯..
 
이 밑을 통해 흐르는 물이
흘러흘러 광풍각 바로 앞을 흘러가는 시원한 계곡물줄기가 된다...
 
'경계'를 세우는 담이건만 '문'은 없는 흙담.
닫힘과 열림의
오묘한 동거.
 
담과 담벼락 사이에 난 길
이 길 뒤편으로는 자그마한 우물이 하나 있고...
 
계곡물길을 바꿔도 되었을 터, 있는 그대로 계곡을 살려두고 그 위로 담이 지나가는 모습이 왠지 저절로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 담을 괸 돌도 귀엽다...
 
 
 
 
 
 
 
 
 
 
아부지가 그토록 열광했던 흙담과 괸돌.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겠지만....만약 내가 만든다면, 물길을 약간 옆으로 돌려서 '내 집 경계 담'을 완성하려 했을 터...
 
자그마한 배려
오래토록 감탄과 미소를 자아낸다...
 
 
 

 
계곡까지 내려가서 온몸 바쳐(!) 아부지가 찍은 사진...
 
 

흙담을 따라 가며 만난 꽃...
음...이름은 모르겠다 ^^;;
녹색의 향연 가운데 콕 찍은 점 처럼 돋보이기에 한 컷~!
 

 
 
현재 소쇄원 경내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인 제월당[霽月堂]
제월은 한자그대로 '비 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을 뜻한다고. 정면 3칸, 측면 1칸의 집으로 왼쪽의 한 칸은 온돌방이다. 반가운 것이 온돌방 한켠에 붙여져 있는 수묵화가 진도 운림선방의 주인, 소치 허유의 그림이었던 것! ^~^ 역시나 알면 보인다고, 이래저래 접하게 되는 인연의 연속은 그저 반갑기만 하다. 무안함을 무릅쓰고 마루에올라가 봤다..
 
 
 
 
 
역시나 많이 민망하지만
^^;;
 
제월당 안 천장에는
여러 문인들이 지은 시구의 판액들이 걸려있었다. 글씨가 작아 자세히 살펴보진 못했지만...본인이 들고 있는 종이는 소쇄원 홈페이지에서 뽑아간 "소쇄원 48영"이란 한시. 소쇄원의 풍경을 읊은 한시를 우리도 조금씩 음미하며 제월당에서 걸음을 쉬며, 소쇄원의 공기를 흠뻑 들이마신다..
 
 
 
 
 
 
 
 
 
 
 
 
 
 
 
 
 
 
 
 
 
 
 
흔들려서 아쉽지만..
제월당 뒷편을 통해 보이는 굴뚝.
 
역시나..우리나라 건축물들은
뒷마당과 연결된 뒷편 창/문들은
하나같이 훌륭한 풍경화가 된다....
 
 
 
 
 
 

제월당에서 바라본 광풍각 쪽 풍경.
작은 쪽문으로 연결된 공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이리 보이는 걸까....
내 눈엔
소쇄원의 구석구석 모두 사진의 대상이 된다..
 
 
 
 
 
 
 
 
 
 
 
 
 
 
 
 
 
층층이 낮아지며 이어지는
소쇄원 흙담...
 
괜히 엄한 복원공사하다가 망치지 말고
이대로 잘
제대로 보존되길 빈다...
 
 
 
 
 

 
제월당을 내려가기 직전....
아직도 군불을 때는 온돌방과 그 연기로 그을린 벽...
여기에 누워 밤새 계곡물소리를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제월당 앞의 쪽문으로 나와 왼쪽으로도니 소쇄원 속 하나의 풍경으로 자리잡은 계곡이 눈앞에 펼쳐진다. 저 위의 흙담 괸돌 있는 곳에서부터 내려온 계곡물이 여기선 폭포처럼 내려가며 큰 소리로 울음을 내뿜는다..
 
 
 
 
 
 

 
소쇄원의 또 다른 정자, 광풍각[光風閣]
제월당과는 달리, 온돌방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ㄷ'자로 마루가 한 바퀴 휘돌고 있다.
빙빙 둘러져 있는 마루에 누워 천장을 보며 물소리를 듣는다..
이른 아침, 약간의 물기를 머금은 공기가 청량감을 북돋는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구나..
 
 
양산보가 계곡 가까이 세운 정자를 광풍각이라 하고 사랑채와 서재가 붙은 집을 제월당이라고 한 것은 송나라 때 명필인 황정견이 주무숙이란 사람의 인물됨을 얘기할 때 ‘가슴에 품은 뜻을 맑고 맑음이 마치 비갠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고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도 같다' 라고 한 데서 따온 이름이다 한다.
 
 오른쪽 벽면에 걸려있는 그림이 소쇄원의 전경을 담은 "소쇄원도" 라고. 만 여평에 달했던 소쇄원의 옛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그림으로, 그 그림을 기본으로 하여 현재 소쇄원 복원 사업이 진행중이라 한다. 부디 기존에 남아있는 정자들, 풍광들과 조화되는 모습으로 완성되었으면 한다..
 
 
 

광풍각에서 계곡을 건너 정면 반대편을 보면 자그마한 연못이 있다. 계곡보다 한참 위인데 어찌 물이 있을까..했더니, 계곡물을 대나무 수로로 끌어들여 흙으로 주위를 둘러 만든 인공연못.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이 연못은 대나무수로가 거의 반을 휘돌고 있다. 그냥 연못 입구에서 수로가 물만 대어주면 되지 않나..했는데, 그럴 경우 물이 고여 썩을 위험이 있어 새 물이 계속 공급되도록 대나무수로길이 만들어져 있다. 조상들의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

 

 

 

 
광풍각 옆에 있는
돌계단에서..
역시나
민망하지만..^^;;
 
왼편 위쪽에 보이는 것은
감나무인데,
거기서 떨어진
정원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흙을 살짝 걷어내고
입에 넣는다.
달달한 맛이
일품이다 ^^
 
 
 
 
 
 
 
 
 
 
 
 
 
 
 
 
 
 
 
 
 
소쇄원 주위의 대나무 숲.
그래...여긴 담양이었지..
 
오늘 오후 일정이
담양 대나무숲이건만,
한껏 눈에 담는 대나무의 푸르름이 질리지 않다.
 
 
 
 
 
 
 
 
 
 
 
 
 
 
 
 
 
 
한쪽으로는
계곡이 내뿜는 의 노래와,
한쪽으로는
바람이 연주하는 공기의 노래가,
위에는
끝없이 올라오는 대나무의 푸르름
돋궈주는 파란 하늘이 바탕이 되고,
아래에는
힘차게 쏟아지는 민물의 포말
감싸주는 내음 짙은 이 바탕이 되어
풍광을 이루는 곳.
소쇄원이다..
 
 
 
 
 
 
 
 
소쇄원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면서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을 뵈었다. 알고보니 현재 소쇄원을 관리하고 계시는 양산보의 17대 후손이시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찌저찌 아부지 고향이야기까지 넘어가니, 창평이 가까운 곳인지라 아부지 친척분 중 한 분을 아신단다.. 나도 들어봤던 친척분이시던데....이래저래 인연의 끈이 쉬이 풀리지 않는 땅이다..새삼 아버지 '고향'의 땅이 느껴진다..
 
 
 
 
 
 
 
 
 
 
 
 
 
위에서 말한 연못.
잉어가 24마리 있단다...
그런데 한 마리가 없어졌다며
할아버지가 혀를 끌끌 차신다.
누군가 건져갔을까나,
밤 사이 산짐승에게 물려갔을까나....
큰 잉어 한 마리가 낳았다는
수 많은 물고기들....
대나무 수로가 한 바퀴 돌고 돌아
자동으로 새 물이 옛 물을 밀고 나가는
 연못가에 핀 보라색 꽃들....
 
 
 
 
 

 
나기기 직전 반대편에서 바라본 광풍각.
우리 말고 이른 시간에 소쇄원을 찾았던 학생 세 명.
서울에서 내려온 여학생들로,
방학끝물기념(!) 친구들과
보성을 지나 들른 차라고. 
^^ 예전 내 친구들과 여행했던 모습이 떠올라
[우리는 국내보단 해외배낭여행이 주였지만^^;;]
약간은...부러움과 이 난다...
좋을 때다...^^

 
사방이 탁 트인 광풍각.
 
등을 댄  차가운 마루의 나무 내음과
쉴새없이 쏟아지는 흰 포말의 계곡물
녹음이 드리워진 초록색 그림자로 휩쌓인 곳.
 
사람이 없던 시간에 찾아갔기에
여유로이 풍광과 자연을 느끼며
보낼 수 있었던 시간.
 
다음에..사람이 많다면 내가 접하는 소쇄원의 모습은 다르겠지.
소쇄원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좋은 느낌으로 간직할 수 있다는 점에
내심 기쁘고 감사하다.
 
 
 
아침의 고요와 담북한 초록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곳, 소쇄원.
소쇄원의 물소리를 가슴 한 켠 간직한 채,
남도 정자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소쇄원을 뒤로하고
소쇄원 근처에 널려있는,
또다른 남도의 정자문화/가사문화를 대표하는 여러 정자들을 찾아보러
길을 재촉한다..
 
 
.... to be continued...



출처 rani's ORCHID ROOM | 뿌까
원본 http://blog.naver.com/spikebebob/120018079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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