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9일 금요일

소름끼쳤던 어제의 광주

그동안 몇 번이나 포스팅하려 했지만

귀찮다고 미뤄왔다.

하지만 어제 일을 보고

분통이 터지고 소름이 끼쳐서 글을 안 남길 수가 없다.


지금은 2000년 하고 8년이 지난 21세기인데

아직도 높으신 분들은 손바닥으로도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운동권이니 시위니 전혀 관련없는 세대라

5.18의 광주는 다른 세계 이야기 같았고 다신 한국땅에서 벌어지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만 방심하면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봐 무섭다.

[출처 : 다음카페 소울드레서]

 

▼ 1980년 5.18의 광주 ▼ 

▼ 2008년 5.18의 광주 ▼


▼ 1980년 5.18의 광주 ▼


▼ 2008년 5.18의 광주 ▼
 


▼ 1980년 5.18의 광주 ▼


▼ 2008년 5.18의 광주 ▼ 


▼ 1980년 5.18의 광주 ▼


▼ 2008년 5.18의 광주 ▼


“망월동은 당신들이 막을 장소가 아니야”

 

“망월동은 이런 곳이 아니야. 당신네들이 막을 장소가 아니야. 당신네들은 부끄러워서 못 올 데가 이 곳 망월동이야. 길을 열어.”

18일 오전 망월동 구묘역,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씨를 비롯해

민주열사 유족들의 참배길이 첩첩이 늘어선 전투경찰 앞에서 막혔다.

이명박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으로 무려 8000여 명의 전투경찰이 망월동을 점령한 가운데 오히려 열사 유족들의 묘지 참배길이 막힌 것이다.

유족들은 구묘역을 참배한 후 신묘역과 이어지는 길을 통해 신묘역으로 가려했으나

“이 곳은 아무도 통행하지 못한다”는 경찰의 대답만 돌아왔다.

유족들은 5·18기념식 행사장에 출입할 수 있는 초청장까지 보여주며 길을 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 많은 목숨이 죽어갈 때는 어디서 뭐하고 이제는 무엇을 지키겠다고 길을 막는 것인가. 그 많은 목숨은 하찮은 목숨이고 대통령 목숨은 귀한 목숨인가.”

1987년 경찰의 최루탄에 맞고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씨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분노를 참지 못했다.

가로막힌 경찰 앞에서 무용지물이 돼 버린 배 씨의 초청장은 그 자리에서 갈기 갈기 찢어졌다.

1986년 6월 6일 목포역 광장에서 민주화운동 탄압 중지와 5·18 진상 규명을 외치며 분신한 고 강상철 열사의 아버지인 강종학 씨도 멀리 해남에서 망월동까지 찾아왔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강 씨는 “어떻게 망월동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냐”며 참담해 했다.

이를 지켜보던 한 참배객은 “학살의 주역인 전두환·노태우와 맥이 닿아 있는 정치인들은 기념식장에 앉아 있고,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들의 유족들은 길이 막혀 갈 수 없는 이 같은 현실이 개탄스럽다”며 착찹해 했다. 



▲ 18일 국립5·18민주묘지 일대에는 대통령 경호를 이유로 경찰 8000여 명이 투입된 가운데, 경찰은 구묘역(오른쪽)에 모인 노동자와 학생들이 신묘역(왼쪽)으로 가지 못하도록 차량 수십 대로 바리케이드를 쳐 놓았다.

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출처 괜찮아 그곳에선 시간도 길을 잃어.. | 조은일
원본 http://blog.naver.com/jeicz/50031530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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