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1일 일요일

남도여행 첫날 (4) - 진도 -> 해남 땅끝마을, 그리고 강진

 

진도에서 나온 후

우리의 방향은 토말...

해남 땅끝마을로 향했다.

 

예전 나우누리 통신할 때부터 알게되었던 K모 언니가 혼자 겨울 여행을 다녀온 뒤, 그 땅이 주는 오롯한 느낌을 잊지 못해 항상 가고팠던 곳.

 

언제가 되더라도

나 혼자라도

땅끝에 서리라..

토말에 서리라....

이제 그 땅에 간다.

 

 

 

바다를 앞에 두고 선

나지막한 산들과

그 산들 뒤에서

매서운 바닷바람을 피하는

너른 벌판들.

 

계속되는 초록에 눈이 익숙해지련만도 한데 아직도 내 눈은 초록의 싱그러움을 따르고 있다. 낙우를 한껏 품은 초록의 맑음은 정말 오랫만이다. 하늘은 한층 더 낮아졌지만 떨어지는 빗줄기의 매서움은 약해지고.. 소금기를 머금은 남도의 대기는 한껏 저녁을 앞두고 한껏 기지개를 킨다.

 

 

  

 

남도의 바다바람을 막아주는 산들은 모두 둥글둥글 두리뭉실하다. 바위산이 없고 모두 흙산이어서 그런 듯... 전라남도는 곡창지대로 논이 많다고 배웠건만 의외로 높은 산들도 많다. 대신 바다쪽에 면한 산들은 똥글매니 귀엽다.

 

해남까지 안 가고 진도 촟입에서 땅끝마을로 갈 수 있다는 표지판이 있다. 그 길로 접어드니 바다와 들판과 산이 서로 경쟁하듯 가까워졌다 멀어진다.

 

 

 

 

휙휙휙 지나가는 차 밖 풍경을 디카로 애써 잡은 컷들. 아쉬움감이 많은 사진들인데도..왠지 정이 간다 ^^ 이정도 나온 것만해도 신기할 따름....디카여서 그런가??

 

여행 전 인터넷에서 땅끝마을 찾아가는 길을 검색해보니 해남서 약 40여 km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 아야 진도에서는.....1시간 안에 도착할 듯...했는데 예상외로 시간을 뺏겨버렷다.....=.=;;

 

 

 

큰 길로 갔으면 좀 덜 돌려나...아니면 우리가 들어선 길이 땅끝 가는 길이 맞는건가....네비게이션 업데이트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길을 떠난지라 중간에 좀 돌아가는 길도 있긴 했는데...진도서 땅끝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도 좁고 구불구불....지방도로 되어 있었다.  트래킹을 하는 듯 큰 배낭을 메고 우리가 가는쪽에서 나오는 일련의 여행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또 네비게이션이 예전 길을 가르쳐줘서 엄한 길에서 구불구불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만치 은.....멀었다.

 

 

그래도 이 구불구불 끝이 안 보이는 지방도를 지나면서 반가운 길안내표지판을 만났다.

"어란진"

.....그래..+.+ 이 근방이겠구나~~ 어진..어란진!!! 진도 벽파진과 가깝구나~!!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에서 일본군을 맞기 전, 소규모 전투였으나 일본군의 배를 십 여 척인가 무찌른 그 곳. 그 일 때문에 명량해전 직전 어란진의 수많은 조선수군들이 몰살당했던 그 곳....그래...이 근처구나..아직 내 옆에 그의 길은 이어져 있구나...


 

길이 길기도 했지만 나도 참 셔터를 많이도 눌렀다..
어란진을 옆에 끼고 땅끝마을로 가는 길은 계속된다.

일군의 소나무들 방풍림...방조림인가..??=.=a
 
빗줄기는 약해지다가 거세지기를 반복하고
그 빈 공간을 매서운 바닷바람이 채운다.
바닷가에 부는 바람이 이리 셀 수 있다는걸 몰랐다...
 
 
도착했다.
저 밑이 땅끝이다.
더이상 갈 수 있는
"육지땅"은 없는 곳.
내가 숨쉬고 사는 이 나라 육지의 끝,
토말. 땅끝마을.
 
직접 가보면
정말 허무하리만큼
땅의 끝과 그 끝을 적시는 파도의 포말
바다와 하늘과 뒷산만 보이는다는 그 곳.
누구나 다 '거기 왜 가~' 하건만, 그렇기에 가보고팠다.
그 허무함을
몸소 느껴보고자.
 
 
 
땅끝을 굽어보는 고개길에 선
아부지..
 
저렇게 웃고 계시지만..
사실 바람이 너무 거셌다;;;
가만히 서 있기가 쉽지 않을 정도라면 과연 믿을 수 있을까?
그런데..정말 그 날의 토말에서 육지로 뱉어내는 바람의 강도는 너무나도 거셌다. 사진을 찍기 위해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그래도 우리가 누구더냐~! 궂은 날씨를 즐거워하며 여행을 떠난 길, 무엇이 두려우랴~
 
 
 
 
해남 땅끝마을, 토말 土末
그래..여기구나...
이제 더 나갈 수 있는 육지는 없구나....
저 멀리 보이는 사자봉전망대에 올라갔다가 비 쫄딱다맞고 흠뻑 젖어 내려온 땅끝마을의 끄트머리. 이제 앞에는 바다밖에 없다.
 
허무한가? 별다를게 없는 이 곳에 실망하는가?
하지만 끝이 있는 곳이 새로움의 시작이다. 땅이 끝나는 곳이 곧 바다의 시작이다. 하루의 시간도 자그마한 우주의 종말이다. 그 하루하루의 종말이 내 인생을 이룬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장소와 그닥 어울리지 않게 중구난방 솟아나온 음식점들이 이 장소를 허무하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것일수도. 어딜가나 광경의 일부분으로 들어가버린 인공물들의 부조화는 가슴아프다.
 

 

 그때문에 이 곳이 더욱 오명을 쓴게 아닐까. 사실....땅 끝에 뭐가 있겠는가.

땅이 닫히고 바다가 열리는 곳...이야 삼면이 바다인 우리 나라 해안가 모든 곳이 '땅끝' 아닌가.

그저 인간들이 그 의미를 부여하여 풍광을 바꾸어 버린 슬픈 곳.

이 곳은 볼 것 없는 허무한 땅이 아니라

그런 허무한 인간들이 쌓아올린 인공물로 인해 슬픈 곳일 뿐.

 이 곳의 땅과 바다는 제 할 일을 다 하고 있으니...

궃은 날씨가 이런 느낌에 일조했을런지 몰라도
몸이 날라갈 정도로 바람 거세었던 땅끝은..
적어도 내게 볼 것 없는 별거 없는 곳이 아니었다.
땅끝 토말은....
여기서부터 이젠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또다른 출발의 장소였다.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토말을떠난다. 이 곳은...다시 올 수 있을까?? 글쎄..아직 이 땅에 내가 가고픈 곳들이 많다. 그 곳을 다 돌아본 후또 다시 새로운 곳을 향해 가기 전.한 번은 찾아올 수 있을까....
토말에서 해남쪽으로 나오면서 발견한 '작은 바다의 기적'을 연상시키는, 바닷가 마을과 연결된 섬의 육계도로 추정(!) 되는 곳...^^ 그래...다시 찾아올 수 있을 것이야..
 
 
 
 
토말에서 다시 육지로 방향을 틀고....
두륜산 근처로 오니 '현산'이란 지명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현산...현산어보..?
@.@;; 정약전의 유배지는 흑산도였는데.....그러고보니 흑산도/홍도도 전라남도구나 신안군에 속해있고, 여기는 해남군....훗..같은 지명이 어디 이 곳 뿐이랴..
 
피식 김새는 웃음을 지으면서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서울이 아닌 남도라는 것을 새삼 또 깨닫는다...그래 난 정말 내가 살고 숨쉬고 웃으며 친구들과 놀던 곳에서 정말 많이 떨어져있구나...이 멀리 떨어져 있음, 거리감이 내심 좋다...
내 이런 기분을 알았는지, 세찼던 비가 잠시 그치고 연분홍빛의 저녁노을을 비추인 하늘이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땅끝에서 그렇게 바람도 불더니 바람도 서서히 그치는 듯....땅끝, 토말에서의 그 세찬 바람은 어여 새로운 길로 다시 접어들라는 재촉이었을까...
 
 
 
 
 
원래 첫날의 숙박은 땅끝에서 자는게 계획이었는데, 오후 7시.....에 이미 땅끝을 나와버려서 좀 더 길을 간 후에 숙박을 하기로 했다. 이튿날의 여정이 고될 것을 예상하야...아직 아부지가 운전하는데 피곤치 않다고 하셔서 좀 더 속력을 냈다. 이튿날의 여정은 오전 중 여수 향일암을 보는 것. 그렇기 위해서 우리의 길은 이제 동쪽으로 굽어졌다..땅끝에서 여수까지..과연 어떤 길이 얼마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것보다도 우선! 나에겐 숙박이 제일 큰 선결과제였다. 음식점이나 모텔이 많았던 토말과 달리 해남으로 나와서 여수쪽으로 달리는 지방도 내내 별다른 식당이나 숙박시설이 보이지 않았기에... 조바심이 바짝 든 나나 동생녀석에 비해서 아부지는 여유만만~ 이런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의 여유인가~ 여하튼.....길이 계속되는 한 누구든 만나, 무엇이든 먹고, 어디에서든 잘 수 있겠지!
 
 
 
 
다시 세차지는 빗줄기를 헤집고 9시 반. 강진에도착했다. 강진이..이리 멀리 있었구나.. @.@  강진하니 떠오르는 인물은 바로 정약용. 아니나다를까. 강진시의 불빛이 멀리보이는 길 위 안내판에 "다산초당" 이정표가 보였다. 4km... 순간 저 곳을 들리지 못하고 지나쳐야 하는 아쉬움이 크다. ㅠ.ㅜ 내 언제 다산초당을 다시 올 수 있을까...그래도 언젠가는....이란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숙소로 들어간다. 아직 식사 전. 오늘 저녁식사는 집에서 준비해 온 삼겹살 파티다~!
 
 
 
하루종일 운전한 아부지와, 그 옆에서 지도와 GPS와 네비게이션을 주시하며 신경 바싹 쓴 동생녀석이 조금은 피로해 보인다. 내 몸이 약간 좋지 않아 무거운 짐을 옮겨주지 못한게 내심 미안하다. 그 마음을 얼른 식사준비로 대신하려 한다. 야채를 씻고 밥을 준비하고 고기를 굽는다. 고소한 돼지비계냄새가 코끝을 간지른다. 시큼한 맥주의 기운이 목을 감싸고 내려간다. 아침나절에 서울에서 출발했는데, 떠난 지 며칠은 된 듯한 묘한 느낌. 피곤함보다는 아직은 남은 여정으로 설레는 마음이 앞선다. 동생녀석도 피곤은 하지만 여행은 싫지 않은 눈치다. 집에 홀로 있는 어무이한테도 전화를 한다. 문단속보다는 혼자있다고 끼니 거를까봐 걱정이지만, 어무이는 멀리 보낸 우리들이 더 걱정인듯 하다. 어무이의 걱정을 안심으로 바뀌어놓고 우리 셋은 누워 TV를 보며 하루를 마감한다. 자기 직전 오늘 찍은 사진들을 가지고 간 노트북에 옮기며 여행의 기억을 곱씹으며 낄낄거린다.
 
강진에 오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내가 갈 길에 강진이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일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강진의 밤하늘이 더욱 애달프다. 여행계획에 넣어서 날밝을때 왔으면 더 좋았으련만...하지만 여행계획을 상당히 빡빡하게 짰던 터라 아쉬움보다는 안도감이 생긴다. 언젠가..강진의 본모습을 보러 이 땅에 다시 들릴날이 있겠지. 그 때는 다산초당을 지나친 아쉬움도 삭히고, 숙소에서 500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던 김영랑 생가도 직접 들어가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그냥...강진의 시원한 밤바람에 젖은 머리칼을 말리는 것만으로 만족하자. 언젠가 다시 맞아줄 강진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to be continued....
 
 
여행 첫째날...가는 곳마다 이것저것 적어두라는 아부지 말씀에 이런저런 것들을 적어놔서 그런지 여행에서 다녀온지 꽤 지났음에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고 이런저런 할 말이 많다. 나의 여행 이야기를 많은 이들이 봐주지 않아도 좋다. 그저 떠나고 팠을 때 가족들과 같이 그 길을 지나왔다는 추억을 잊지 않고자 적어가는 글들. 이제 첫째날이 끝났고...이번 여행을 하이라이트...둘째날과 셋째날의 재잘거림이 남았다. +.+





출처 rani's ORCHID ROOM | 뿌까
원본 http://blog.naver.com/spikebebob/120017762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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