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광주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광주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0년 5월 18일 화요일

비오는 5.18... 하늘도 슬픈가보다...


어제 6시반 쯤 광주에 계신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오후부터 광주에는 비가 내린단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5.18 전야제가 한창 준비중일텐데... 비가 오면 사람들이 많이 오질 않을텐데...ㅠㅠ
조금 지나니 서울에도 비가 오기 시작한다. 마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오늘 오전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거칠게 내리는 빗방울을 하염없이 보고 있자니 문득 떠 오르는 사람이 한명 있었다.

몇 해 전이었다. 수업중에 잠시 쉬는 시간..
복도 한쪽편에서 커피를 홀짝대고 있는데 수업받던 학생 중 한명이 다가와서 대뜸

"교수님... 다음 주에 저 휴강을 좀 시켜주세요~~"하는 것이었다.

"무슨 사정이 있어요..??" 물으니

갑자기 모자를 벗으며 휴대폰으로 달력을 보여준다.
모자를 벗은 머리가 삭발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

"제가 광주가 고향인데요... 다음 주 수업일이 5월18일이에요..." 한다.

모자를 벗은 얼굴 표정이며 말투를 보아 휴강을 시켜주지 않으면 결강을 각오한 듯 보였다.

"그러세요.. 대신 인증사진(그 땐 인증샷이랑 단어가 일반적이지 않았나보다)을 좀 찍어오세요.."

했더니 그제서야 환한 표정으로

"고맙습니다."를 연발한다.



오늘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날이다.
그런데 위 사진을 보다시피 행사는 순탄하게 열리지 못했다.


물론 어제부터 내린 비로 인해 어제 저녁 전야제부터 행사에 참여한 사람이 얼마되지 않아서 어느 정도 예상은 됬지만 여기에 군가보훈처가 그동안 기념식장에서 제창곡으로 사용해 오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식전음악으로만 사용하고 5·18 단체 대표들의 경과보고도 식순에서 빼기로 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대통령이 2년 연속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은 무성의한 태도를 꼬집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오는 것도 반갑지도 않다.

오늘 5.18관련 단체와 유족들은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개최된 공식행사를 거부하고 망월동 구묘역에서 자체적으로 기념식을 가짐으로써 그야말로 반쪽짜리 기념식이 되어버렸다.


수업을 마치고 인터넷 뉴스를 확인해 보니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정부의 5.18 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식 진행 미숙을 비판하고 나섰다고 한다.


그동안 추모곡으로 불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식순에서 빼버린 것도 말이 안되는 상황인데 대통령 대신 참석한 정운찬 국무총리 입·퇴장 때 "노자 좋구나 오초동남 너른 물에~"로 시작하는 경기민요 '방아타령'을 연주하려 했다가 관계자들이 반발의견을 우려해 취소했다는 것에 대해 질책이라고 한다.

그나마 집권당에도 제대로 정부의 잘못을 꼬집어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ㅍㅎㅎ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5.18 민중항쟁 제30주년 서울기념식에 화려한 화환을 보내 눈살을 찌푸리게 하자 급하게 흰 국화로 만들어진 조화로 교체하는 해프닝이 있었다고 한다.

김무성 원내대표의 발언은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현시점에서 혹시 모를 역풍을 차단하고 나선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5.18기념식에 대한 정부의 이번 방침에 대해 인터넷을 중심으로 비판이 거세지고 있고 또한 오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앞두고 진보진영 결집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는 포석이 깔려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마음이 무거운 하루다.
오늘도 그 학생은 광주에 갔을까? 이럴 때는 나도 하루쯤 휴가 내고 쉴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이었으면 좋겠다.
아쉬운대로 서울광장이라도 가서 헌화해야겠다.


2009년 6월 19일 금요일

소름끼쳤던 어제의 광주

그동안 몇 번이나 포스팅하려 했지만

귀찮다고 미뤄왔다.

하지만 어제 일을 보고

분통이 터지고 소름이 끼쳐서 글을 안 남길 수가 없다.


지금은 2000년 하고 8년이 지난 21세기인데

아직도 높으신 분들은 손바닥으로도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운동권이니 시위니 전혀 관련없는 세대라

5.18의 광주는 다른 세계 이야기 같았고 다신 한국땅에서 벌어지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만 방심하면 또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봐 무섭다.

[출처 : 다음카페 소울드레서]

 

▼ 1980년 5.18의 광주 ▼ 

▼ 2008년 5.18의 광주 ▼


▼ 1980년 5.18의 광주 ▼


▼ 2008년 5.18의 광주 ▼
 


▼ 1980년 5.18의 광주 ▼


▼ 2008년 5.18의 광주 ▼ 


▼ 1980년 5.18의 광주 ▼


▼ 2008년 5.18의 광주 ▼


“망월동은 당신들이 막을 장소가 아니야”

 

“망월동은 이런 곳이 아니야. 당신네들이 막을 장소가 아니야. 당신네들은 부끄러워서 못 올 데가 이 곳 망월동이야. 길을 열어.”

18일 오전 망월동 구묘역,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씨를 비롯해

민주열사 유족들의 참배길이 첩첩이 늘어선 전투경찰 앞에서 막혔다.

이명박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으로 무려 8000여 명의 전투경찰이 망월동을 점령한 가운데 오히려 열사 유족들의 묘지 참배길이 막힌 것이다.

유족들은 구묘역을 참배한 후 신묘역과 이어지는 길을 통해 신묘역으로 가려했으나

“이 곳은 아무도 통행하지 못한다”는 경찰의 대답만 돌아왔다.

유족들은 5·18기념식 행사장에 출입할 수 있는 초청장까지 보여주며 길을 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 많은 목숨이 죽어갈 때는 어디서 뭐하고 이제는 무엇을 지키겠다고 길을 막는 것인가. 그 많은 목숨은 하찮은 목숨이고 대통령 목숨은 귀한 목숨인가.”

1987년 경찰의 최루탄에 맞고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씨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분노를 참지 못했다.

가로막힌 경찰 앞에서 무용지물이 돼 버린 배 씨의 초청장은 그 자리에서 갈기 갈기 찢어졌다.

1986년 6월 6일 목포역 광장에서 민주화운동 탄압 중지와 5·18 진상 규명을 외치며 분신한 고 강상철 열사의 아버지인 강종학 씨도 멀리 해남에서 망월동까지 찾아왔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강 씨는 “어떻게 망월동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냐”며 참담해 했다.

이를 지켜보던 한 참배객은 “학살의 주역인 전두환·노태우와 맥이 닿아 있는 정치인들은 기념식장에 앉아 있고,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들의 유족들은 길이 막혀 갈 수 없는 이 같은 현실이 개탄스럽다”며 착찹해 했다. 



▲ 18일 국립5·18민주묘지 일대에는 대통령 경호를 이유로 경찰 8000여 명이 투입된 가운데, 경찰은 구묘역(오른쪽)에 모인 노동자와 학생들이 신묘역(왼쪽)으로 가지 못하도록 차량 수십 대로 바리케이드를 쳐 놓았다.

임문철 기자 35mm@gjdream.com



출처 괜찮아 그곳에선 시간도 길을 잃어.. | 조은일
원본 http://blog.naver.com/jeicz/500315306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