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8일 일요일

1940년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헤디 라머

 


생년월일 - 1914년 11월 9일 ~ 2000년 1월 19일

출신 - 오스트리아, 빈

신장 - 1.70 m

닉네임 - The Most Beautiful Woman In Films


1940년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꼽혔던 헤디 라머는 은행가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Hedwig Eva Maria Kiesler 란 이름을 갖고 태어났다. 피아노와 발레를 공부한 그녀는 베를린에서 감독 겸 배우였던 막스 라인하르트에게 연기를 배우게 되는데,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된 그의 눈에 들게 되면서 일찍부터 영화계에 발을 딛게 된다.

스물도 채 안된 나이로 유명배우들과 함께 주연급 배역을 맡으며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1933년 구스타프 마하테 감독의 체코슬로바키아 영화 <엑스타제>를 찍게 되고 이 영화는(특히 10여분 동안의 알몸 수영 장면은) 국제적인 주목을 끌었다. 같은 해 그녀는 영화에서처럼 꽤나 연상의 남자인 프리드리히 만들이란 남자와 결혼한다.




그런데 무기거래상이었던 만들은 전체주의를 신봉하던 나치 동조자로서 그녀에 대한 집착이 무척이나 대단했다 한다. 연기활동은 물론 사생활까지 간섭하며 통제하자 이를 견디지 못한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을 감시하던 하녀에게 약을 먹이고 탈출을 감행하여 파리로 피신했다.

파리에서 이혼수속을 마친 그녀는 런던으로 건너가는데 그곳에서 MGM사의 공동설립자인 루이스 메이어를 만나게 된다. 그녀를 스카우트한 MGM사는 그녀의 이름을 헤디 라마(라스트네임은 무성영화시대의 스타 바바라 라마의 이름에서 딴 것이라 한다)로 바꾸고 일련의 모험 영화에 주연으로 기용했는데, <알제>와 <열대의 숙녀>, <화이트 카고> 등이 그것이다. 특히 화이트 카고에서의 톤달레요 역할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매력을 선사했으며 그녀의 미모는 눈이 멀 정도로 눈부셨다.



이국적이면서도 위험한 분위기 때문인지 그녀는 배신이나 자살기도, 심리적 불안정과 같은 요소를 지닌 캐릭터를 자주 맡곤 했는데, 일부 장르에 국한된 단순히 섹시한 미녀가 아니라 한 명의 연기자로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배우로서의 재능도 증명해 보였는데, 할리우드의 위대한 배우 스펜서 트레이시와 함께 출연한 <아이 테이크 디스 우먼>과 <토르띠야 플렛>에서의 놀라운 연기는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너무도 유혹적이고 관능적인 데릴라의 아우라를 남긴 대작  <삼손과 데릴라>를 고비로 내리막길을 걷던 라마는 마흔 네 살의 나이에 은퇴했다. 그녀는 여섯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으며, 두 자녀와 입양한 아들이 한 명 있었다.

흥미로운 사족을 하나 덧붙이자면 그녀가 과학에도 조예(첫남편 만들과의 시절 그녀는 수학과 과학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고)가 깊었다는 것이다. 절친한 이웃이었던 작곡가 조지 앤데일(폴란드계 미국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한때 파리에서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음악인으로 각광받았던 그는 페르낭 레제의 단편 <기계적 발레>의 음악을 맡기도 하는 등 전위음악을 추구하다가 1930년대 후반부터 헐리우드에 정착하여 영화음악을 만들었다)과 함께 발명한 'Secret Communication System'은 원래 다양하고 복잡한 여러 개의 악기 연주를 동시에 통제할 수 있게 고안된 실험으로서 훗날 케네디의 쿠바 봉쇄 시기 군사무기로 개발되었으며, 오늘날 IT기술의 상징인 CDMA의 토대가 되기도 하였다.


출처 : http://blog.daum.net/ellestyle/195?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ellestyle%2F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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