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기억하고 싶은 글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기억하고 싶은 글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09년 8월 27일 목요일

'오늘'을 사랑해야 '내일'이 열린다

<이미도의 인생을 바꾼 명대사>

'오늘'을 사랑해야 '내일'이 열린다.

오늘은 선물입니다.  Today is a gift!

"우리 인생에는 부모, 연인, 그리고 가슴 뜨거운 추억들과 맞잡이인 책들이 있습니다.
(There are books which rank in our lives with parents and lovers and passionate experiences.)"

랠프 월도 에머슨의 말에 어울림직한 책 '땡큐! 스타벅스(How Starbucks Saved My Life)'를 읽었습니다. 저자인 마이클 게이츠 길은 세계적 광고대행사인 제이 월터 톰슨에 들어가 말단 카피라이터에서 부사장직까지 승승장구합니다.

그러나 모든 걸 가졌던 그도 세대 교체의 칼바람을 맞습니다. 절망의 나락에 떨어진 뒤 뉴욕의 한 커피숍에 앉아 하루하루를 걱정하던 64세의 마이클은 '일해볼 생각 있어요?(Would you like a job?)'라며 말을 걸어온 흑인 점장을 만나고부터 인생 역전의 의지를 다집니다.

화장실 청소 등 허드렛일에서 시작해 바리스타로 승진하기까지 그는 힘들 때마다 '과거는 빨리 잊고, 더 희망찬 미래를 설계하자.(Less past, more future.)'는 주문을 가슴에 새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현재, 즉 present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past, present, future 중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현재'라는 교훈을 무언으로 역설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요?

1980년대 중·후반, 핵주먹으로 전성기를 누린 마이크 타이슨도 크나큰 시련을 거치며 생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복서지요. 폭행을 일삼고, 마약에 탐닉하면서부터 절망의 나락에 떨어졌다가 재기한 그는 자신의 인생 파노라마를 담은 다큐멘터리에서 주인공으로 우뚝 섭니다.

프랑스 칸에서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 그는 언론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과거의 삶을 자평한다면? 미래의 계획을 소개한다면?" 그러자 그는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Kung Fu Panda)'가 선보인 명대사와 똑같이 대답한 뒤 사랑하는 가족과 유유히 자리를 떴습니다.

'쿵푸 팬더'는 '피라미에서 용으로 거듭난(from zero to hero)' 판다의 무용담을 그린 영화입니다. '혈관에 육수가 흐르는 끼'를 물려받아 탕면식당에서 면발만 뽑던 판다는 얼떨결에 쿵후 고수들의 전당에서 '용의 전사(dragon warrior)'로 간택되지요. 그러나 자신의 미션이 무시무시한 악당 표범을 무찌를 필살기를 연마하는 것임을 알게 되자 도망칠 궁리만 합니다.

숨은 능력을 미처 꽃피우기도 전에 과거의 무미건조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진 것이지요. 그때 스승께서 뚜벅 이런 충고를 합니다. 그 후 판다는 혹독한 수련을 이겨내고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납니다.

"어제는 사라진 과거! 내일은 알 수 없는 미스터리! 오늘은 선물!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the present라고 부르니라.(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 That's why we call it the present.)"

생의 막다른 길에서 물러서지 않고 배수진을 친 마이클 게이츠 길, 마이크 타이슨, 그리고 판다를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되게 한 계기는 '오늘'의 소중함을 자각한 순간이라고 확신합니다.

그 들이 '오늘'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면서부터 가능했던 것이고요. '과거의 아픔을 영영 잠재우는 것은 사랑(Love lets the past die)'이니까요.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분명 오늘은 '선물'입니다.

작가·외화번역가


2009년 6월 23일 화요일

프리젠테이션 비법


 말하는 원칙에 대해


언뜻 생각하면 말하는 것, 즉,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쉽다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해야 하는 것 (나의 아이디어, 컨셉, fact)'을 제 3자인 청중에게 '말하는 (커뮤니케이션)'하는 기술은 결코 쉬은 일은 아닙니다. 프리젠테이션 시작에 앞서 우선,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agenda'나 프리젠테이션의 목표가 포함되는 소개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용, 정보를 제공하고 프리젠테이션을 요약합니다.

 

마지막이 처음입니다 - 요약/결론 슬라이드
한 조사에 의하면 프리젠테이션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5개 이하의 중요한 점만을 "기억"한다고 합니다. 이상적으로, 발표자는 기억해야 할 5개 이상의 중요한 점, 컨셉(concept), 사실(fact)에 대한 목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참석자들에게는 자신이 기억하는 5가지 점에 대한 목록이 있어야 합니다. 전달이 중요하단 의미입니다.

 

그러면 상관관계란?
당신의 메시지가 관중들에게 피드백이 있습니까? 또는 참석자들이 중요하지 않는 점을 기억하고 당신의 중요한 아이디어는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들이 5가지 점만을 기억한다는 것은 좋은 사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을 그들이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청중이 기억하기를 원하는 것을 그들이 기억하게 하려면?

 

마지막 슬라이드로 시작하십시오! 정말입니다. 프리젠테이션을 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당분간 자세한 점들은 잊기 바랍니다. 그리고 프리젠테이션의 구성도 잊으십시오, 대신,


결론이나 요약을 먼저 적으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계획하는 가장 중요한 점이 강조됩니다. 이러한 점을 눈에 띄게 만들게 되면, 요점을 향해 당신의 프리젠테이션을 상대적으로 쉽게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The Basic Rules of Good Presentations

KISS - Keep It Simple Stupid (간단하고 짧게)
SES 법칙 (Simple, Easy, Short)라고도 합니다. 요점부터 말하자면, 더 복잡하게 만들게 되면 더 많은 곤란을 격게 된다는 것입니다. 메시지 전달에 프리젠테이션이 집중하도록 하며, 특별 효과와 현란한 기교를 많은 정렬을 쏟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무 현란한 그래픽과 효과는 청중을 산만하게 하고, 청중들로 하여금 당신의 메시지가 아닌 그림을 보게 하는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명심하십시오! 프리젠테이션의 목적은 메시지의 전달입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하기 10분 전에는 임대장비가 도착해야 합니다. 와야 할 장비가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아 당황하게 되면 중요한 프리젠테이션을 망치게 됩니다.

 

프리젠테이션 리허설하기
가장 프로다운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는, 바로 당신이 자신의 프리젠테이션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발표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디어와 컨셉은 청중에게 전혀 먹히지 않습니다. 초점이 없고, 노트 내용과 무관하고, 연설 중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긴 간격을 두는 것과 같이, 갈팡질팡하는 프리젠테이션은 또한 청중들에게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프리젠테이션 리허설에서는 실제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할 상황에서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실제와 같은 장비인 슬리이드, 프로젝트 빔을 사용하고 프리젠테이션이 있을 같은 방에서 리허설을 하십시오. 무선 마우스, 레이져 포인터 또는 마이크로폰을 사용할 지 결정합니다. 이러한 실제 장비로 프리젠테이션을 리허설합니다. 그리고 시작 전에 모든 장비를 점검하고 사용법을 숙지하여야 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프리젠테이션이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 국가를 다니면서 프리젠테이션을 했던 상사들 중에서도 치명적인 실수를 하는 적을 간혹 보았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준비 중 빠진 점이 없는가 다시 생각하면서도 예측하지 못할 상황들이 발생합니다. 노트북을 이용하고 해외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한다면 그 국가에 맞는 전기 어탭터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테리 충전을 반드시 점검합니다. 때에 따라 여분의 긴 전기 익스텐션 라인도 필요합니다. 인터넷과 연결하여 실시간으로 데모가 필요하다면 인터넷 설정을 확인합니다. 경우에 따라 달팽이처럼 느린 인터넷 라인이 현장에 연결되었을 경우 대안 B로 만든 캡처 화면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청중들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청중들은 인내를 용인하지 않습니다.

 

내용을 외우지 마십시오 -- 가슴으로 이해하십시오!
리허설을 통해 프리젠테이션 내용을 기억하고 가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명심하십시오! 당신은 프리젠테이션 내용을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발표하여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는 자신이 발표하는 내용을 믿고, 마음으로 인정하는 브래인스토밍을 하여야 합니다.

 

메모한 노트는 아껴서 사용합니다.
노트를 읽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면 듣는 사람들은 당신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 프로가 아니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절제하여 준비한 노트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노트를 읽는 중에도 시선은 메모와 청중들을 번갈아가며 주어야 합니다.

 

정장보다는 성공을 입으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프리젠테이션을 위해서 정장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의 무게있는 정장을 입는 것이 좋지만, 필요에 따라서 프리젠테이션의 내용이나 상황에 따라 과감한 시도를 할 필요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로 청바지 홍보 프리젠테이션에서 직접 신제품을 입고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없다면 사람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적절한 유모와 형식적인 진행을 신축성있게 사용합니다.

 

보조를 맞춥니다 -- 너무 빨리 또는 너무 늦게 진행하지 마십시오.
일반적으로 모든 "슬라이드"는 적어도 10초, 그리고 100초를 넘어서는 안됩니다. 한 장의 슬라이드로 몇 분을 소비한다면, 과감히 잘라야 합니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가이드라인입니다. 물론 일부 도표와 그래픽은 잘 보여주려면 몇 분도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긴 것은 몇 장의 "슬라이드"에 한해야 합니다. 한 장으로 몇 분을 설명하는 슬라이드가 늘어날 경우, 청중의 눈을 관찰하시기 바랍니다. 초점이 흐려지고, 많이 어수선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 스피드를 올려야 할 시간입니다.


프리젠테이션 도구는?
슬라이드, LCD, LDP 프로젝터, 랩탑, LCD 패널, 비디오, 멀티미디어, 사운드, 레이저 포인터, 라펠 마이크로폰, 오버헤드, 포스터프린터 등… 발표자로 사용할 수 있는 프리젠테이션 도구는 넘쳐납니다. 당신의 커뮤니케이션 needs, 프리젠테이션 환경을 결정하고 당신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적절한 도구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유인물을 준비합니다.
프리젠테이션은 좋았고 참석자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더 이상 좋을 수 없었습니다. So what? What's wrong?

몇 명의 참석자들이 자신의 회사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상사에게 프리젠테이션에 대한 질문을 받고 브리핑을 하러 상사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은 자신이 프리젠테이션에 참가하고 그에 대한 컨셉이 생겼다고 자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행히도 구체적으로 설명을 못하고 맙니다. 왜일까요?

제공된 유인물 또는 handout이 없거나 그 내용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메시지에만 힘을 싣지 마십시오. 적절한 유인물은 종종 성공적인 프리젠테이션의 큰 효자 역할을 합니다.

자, 이제는 효율적인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입니다.

 

Overcoming Fear and Shyness

많은 중역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데 공포를 느낍니다.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것이 초조해지면, Art Feierman은 다음과 같이 조언합니다. "그럴 경우, 이전에 들은 오래된 기술이 있습니다. 그 장소에서 나가서 주위를 돌아보고 잠시 눈을 감고 첫번째 줄에 있는 옷을 입지 않거나 속옷차림의 사람들을 연상합니다 (당신의 윤리가 허락하는 한에서!). 이러면 긴장이 풀어지고 거의 유모스러운 효과까지 주게 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많은 프리젠테이션 경험이 없었을 때, 모 상공회의소에서 4-500명의 관중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선 앞에 서니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 제품에 대해서, 내 서비스에 대해서는 꿰뚫고 있었는데, 무엇을 말해야 할지도 정리도 안 되었습니다. 내용을 마음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외운 이유이기도 하였지만. 더욱 더 큰 문제는 우선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갈팡질팡 되었습니다. 대중공포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 둘 들어오고 강당은 가득 차고. 그 때 같이 간 상사의 말이었습니다. "우선 눈에 잘 보이는 한 두 사람을 골라서 그들에게 말을 하세요. 다른 사람들도 관찰해야지 하지만, 몇 명에게만 집중해요. 그게 어려우면 나에게 시선을 주세요. 알았지요?" 이렇게 나의 편을 청중 속에 심어놓는 것도 대중공포증을 피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당신의 "대중공포증"이 사라질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당신의 청중과 지속적으로 연결이 될 것이고, 피드백이 있게 됩니다.


Your Place as a Presentor

컴퓨터가 아니라 당신의 청중을 조절하십시오.


  - 당신의 청중과 마주하고,

  - 그들을 관찰하고,

  - 눈을 마주칩니다 - 방 주위를 배회하거나 아래를 보지 마십시오. 방황은 초조의 사인이며, 아래를 쳐다볼 때 "다음에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세요 - 당신은 연사입니다).

  - 컴퓨터를 의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즉, 그 뒤에 숨지 말란 말입니다. 무선 마우스를 가지고 청중의 앞에 서서 발표자, 리더, 중개자, 전달자로서 자신있게 섭니다.

 

질문을 미루는 방법과 지속적인 follow-up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발표하는 프리젠테이션의 성격에 따라, 프리젠테이션 중에 질문을 받는 것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 그 자리에서 질문에 답을 주는 것이 적절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점을 나중에 설명하는 것이 산만한 진행을 피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또는 회의가 끝난 후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이 점을 어떻게 다룰 지 결정하는 것이 최상입니다.

프리젠테이션의 흐름을 조절하는 것. 적절할 경우, 질의응답 시간을 프리젠테이션 끝 부분에 Q&A 세션에서, 또는 끝난 후로 연기합니다. 다음과 같이 답을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제가 …을 다룬 후에 당신의 질문에 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또는 "이 프리젠테이션의 결론이 난 후에 당신과 제가 의논할 수 있습니다. 또는 "죄송하지만 지금 가능한 정보가 저에게 없습니다. 미팅이 끝난 후 만나서 당신의 이름을 받고… 다음 주에 연락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청중의 반응을 알 수 있는 방법은?
힌트: 코를 골며 자는 것은 정말로 나쁜 조짐입니다!


앞에서 청중 중에서 몇 명의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라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들이 경청하고 있습니까? 당신의 Body language는 어떻습니까? 청중들이 안절부절 못하거나 시계를 보고 있습니까? 필기는 하고 있나요? 졸고 있지는 않은지요? 중요한 것은, 당신의 프리젠테이션의 어떤 부분이 그들에게 감동을 주는지, 그리고 어떤 부분을 청취자들이 놓치고 있는지를 필기를 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프리젠테이션 장비의 기술 발전으로...
지금 여러분에게는 랩탑과 프로젝터가 있습니다. 몇 년 내로 프리젠테이션 제품은 큰 성장을 보였습니다. 예로 오늘날 프로젝터는 컴퓨터가 지난 5년 내에 발전한 것처럼 지난 2년 사이에 많이 발전했습니다. 기능의 큰 향상으로 모든 사람들은 당신과 당신의 프리젠테이션에서 더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프리젠테이션의 목적은 정보와 지식의 제공이지, 현란한 그래픽의 제공은 아닙니다.
이것은 아마도 KISS의 결론일 것입니다. 당신의 프리젠테이션의 목적은 아이디어와 정보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지 현란한 그래픽으로 사람들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프리젠테이션이 끝나게 되면, 깔끔한 그래픽, 특수 효과와 같은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설명한 아이디어에 대해 의논하려고 청중이 당신에게 걸어나오기를 당신은 원할 것입니다.

 

당신의 프리젠테이션에는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청중에게는 '무의식'이 있습니다.

 

내용 진행이 되었고 당신은 모든 규칙 - 프리젠테이션에서 지켜야 할 모든 것 - 즉, 방향, 초점, 정보, 강조 - 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인가?
열정 - 당신의 열정과 믿음을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 외의 그 어떤 것도 당신의 프리젠테이션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복음사의 "당신은 믿습니까 - 저는 믿습니다"식은 아니지만, 청중은 당신의 믿음, 신뢰를 알게 되고, 이 점은 당신의 메시지에 신용을 추가하게 됩니다.

언어의 힘에 대해서...
당신이 선택하는 단어는 당신의 청중의 반응 - 발표자로서 당신의 아이디어와 당신의 효율성 모두에 -- 에 극적인 영향을 줍니다.

요즘 워드 프로세스에는 동의어 사전이 있습니다. 사용법을 효율적으로 배우시기 바랍니다. 청중의 주의를 끌고 신뢰와 능력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힘이 있고" "지배적인" 단어를 사용합니다.

일례로, "저는 생각하고 동의합니다"라는 말 대신에 "저는 당신이 동의할 것임을 확신합니다".
"저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할 것을 원합니다" 대신에 "저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추천합니다".
"당신"이라는 이인칭으로 당신의 청중을 대하기 바랍니다. "당신"은 매우 강한 단어입니다. 일반적으로 제 삼자로서 보다는 "당신"으로 칭할 때 청중들의 반응은 좋습니다. "참석자들은 이런 이익을 받게 됩니다". 대신 "참석자로서 당신은 이런 이익을 받습니다" 식으로 말합니다.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진 더 "좋은" 단어를 찾아내기 위해서 뿐 아니라, 계속적으로 같은 단어를 과도하게 사용하지 않기 위해서 동의어 사전을 사용해야 합니다.

 

적시적절한 유머는 효과적입니다.
현명하게 사용된 적절한 양의 유머는 당신과 청중의 관계를 형성하고 당신의 청중이 계속 당신의 메시지에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이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원칙적으로, 농담을 위한 농담을 하지 말고 어떠한 사항에 대해서 적절할 때 또는 휴식 시간 중에 농담을 하기 바랍니다. 약간의 유머나 때로의 관계없는 코멘트는 프리젠테이션을 생동감 있게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졸고 있는 청중은 메시지를 거의 기억하지 못합니다. 졸고 있다면 적절한 유모로 그들을 깨우십시오. 저의 경험으로 발표자로서 청중을 볼 때 마치 그들은 어린아이와도 같습니다. 지루하면 이내 그 모습이 얼굴에 드러나게 됩니다. 이내 얼굴은 짜증어린 표정이 서리고, 졸기도 하고, 그리고 시계를 보게 됩니다.

행운을 잡는 것에 너무 서두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짜 사람들 앞에서 당신의 프리젠테이션을 리허설하는 것은 당신의 유머가 "먹히는지"를 시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어설픈 유모는 안 하니만 못합니다. "먹히고" "효과있는" 유머만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리허설 할 때 시험하시기 바랍니다.

유머파워 (Humor Power)의 저자인 심리학자 허브 트루는 유머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하였습니다. "효과적인 의사 전달에서의 적절한 유머 사용은 상호간의 긴장을 없애주거나 적의를 없애주는데 절대적인 도움을 줍니다."

 

다음은 유머 사용에 대한 몇 가지 주의사항입니다.

프리젠테이션의 의도나 목적, 진행 내용과 반드시 연관이 있어야 한다.
  - 가능하면 새롭고 신선하고 예측하지 못한 것을 준비하여야 한다.
  - 유머는 간단 명료하면서도 전달하는 이미지가 강해야 한다.
  - 격의있는 고상한 유머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 가끔 자신의 실패담이나 성공담을 적절히 섞어 사용하여 청중들에게 감동을 준다.


청중을 집중시킬 수 잇는 효과적인 인용 또는 testimonial을 사용합니다.
적절한 인용은 당신의 청중에게 눈에띄는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당신의 프리젠테이션에 직접적으로 관련있는 인용을 찾는 것은 늘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의 프리젠테이션의 개념을 보완하거나 도움을 주는 일련의 인용을 찾는 것은 때로 어렵지 않습니다. 이러한 인용이나 고객의 증언과 같은 것은 당신이 제안하는 아이디어와 fact를 뒷받침하는 좋은 증거가 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청중들은 신뢰로 이르게 됩니다.

예로, 한 발표자가 그의 프리젠테이션에서 토마스 왓슨(IBM), 켄 올슨(DEC), 빌 게이츠(Microsoft)…를 포함한 컴퓨터 "공상가"들에서 인용하기를 좋아한다고 합시다. 인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토마스 왓슨 (이전 IBM 회장)은 컴퓨터가 이렇게 대중화 될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켄 올슨 (DEC의 창시자이지 이전 사장)은 모든 사람들이 집에 컴퓨터를 원하는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 빌 게이츠는 640k 메모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일단 인용을 한 후에, 청중은 더 많이 "보게"되고 - 그런 인용은 청중에게 영향력을 주게 됩니다.
당신의 청중과 코끼리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코끼리는 잊는 일이 없는데 - 청중은 때때로 기억한다는 것!

 

Art's Rule of Five

리허설 시 해야 할 5가지

1. 실제 프리젠테이션 전 리허설을 할 때, 개요와 요약 슬라이드를 삭제하십시오. 대신 청중에게 관심있고, 기억되고, 혼동을 주는 것을 찾아냅니다. 그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나열합니다. 당신의 메시지를 그들이 접수했습니까?

2. 프리젠테이션 전에 모든 당신의 장비를 테스트합니다.

3. 실제 프리젠테이션 중에 사용할 가능하면 모든 장비를 사용하여 리허설합니다.

4. 백업 플랜을 만듭니다. 프로젝터가 죽는다면, 컴퓨터가 망가진다면, 슬라이드 판에 이상이 있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대안 B는 무엇인지 (그리고 연습은 했는지?)

5. 소개, 목적, 개요,. 프리젠테이션, 요약 (결론)

 

청중이 해야 할 5가지

1. 깨어 있어야 한다.

2. 그들이 찾는 정보를 받는다.

3. 메시지를 받는다.

4. 당신이 발표하는 정보를 볼 수 있는 유인물을 옆으로 치운다.

5. 당신의 정보에 반응한다.

 

끝난 후 당신이 해야 할 5가지


1. 청중에게 감사한다!

2. 자료를 준비한다.

3. 당신 자신을 준비한다.

4. 청중에게 당신과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전달한다.

5. 피드백을 받는다 - 그들이 당신에게 대해 생각하는 것, 그들이 알게 된 것, 배우길 원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 당신의 프리젠테이션을 향상시키는 방법, 당신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무엇인지.

 

* 어디선가 퍼온 글인데 출처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합니다. 혹시 아시는 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본의 제일부자, 손정의


일본의 제일부자, 손정의

 

세계적인 주간지인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브스》가 지난 6월 9일 발표한 ‘일본 부호 40인’ 가운데 자산총액 70억 달러(약 6조5000억 원)로 1위를 차지한 인물은 한국인이었다. 그가 손정의다. 2005년 《포브스》 조사에서 9위에 랭크됐던 그는 보유 주식의 주가 상승으로 올해 일본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손정의는 1981년 PC용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한 뒤 포털사이트 ‘야후 재팬’ 운영 등으로 사업 기반을 마련하여 큰돈을 벌었다. 이후 공격적인 정보기술(IT) 분야 투자로 일본 내 최대 IT 기업군을 갖고 있다. 2001년에는 통신사업에도 진출하여, 지난 4월 세계 최대 통신업체인 영국 ‘보다폰’ 일본법인을 일본 기업인수 역사상 최고액으로 사들였다. 2005년에는 프로야구단을 인수하기도 했다.

 

 

구조적인 불황과 심각한 실업은 이제 우리 사회의 일상이 되었다. 대학은 취업입시학원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청년들은 본인의 적성이나 기호는 생각지도 못하고 어렵게 고개를 들이밀어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는 자기실현은 포기한 채 다만 밥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며 근근이 삶을 이어갈 뿐이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열악한 조건과 상황에 굴하지 않고 꿈꾸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긴 한 남자가 있다. 일본에서 재일교포 3세로 태어난 조센진 아이. 일본아이들이 이유 없이 던진 돌에 맞아 피를 흘린 소년.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을 태생의 한계 때문에 이루지 못해 울분을 삼켜야 했던 청년. 그러나 그는 결코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으로 달려갔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꿈꿨으며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온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는 이루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이 책에 담긴 그의 파란만장을 인생을 읽다보면 일상에 안주하고 있는 청춘은 다시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고, 손정의도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꿈을 꾸는 청년들이 필요하다.

 

 

IT거품이 가라앉고 옥석이 분명하게 드러난 지금 손정의는 자신이 허수가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소프트뱅크는 5년 만에 안정적으로 흑자로 접어들었다. 얼마 전 일본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대학생과 신입사원들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선정될 정도로 그는 일본에서도 인정받는 경영자다. 그는 지금도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맡은 일에서 최고가 되기를 꿈꾼다.

 

 

‘국민타자’ 이승엽이 연이은 홈런 행진으로 주가를 높이고 한류의 열풍에 힘입어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서 히트를 치고 있지만 일본에서 재일 한국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역경을 뚫고 일어선 재일 한국인의 성공 스토리는 이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은 M&A를 통해 성장한 사업가로 세계 최대 인터넷 재벌을 일군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소프트뱅크 그룹의 인터넷 매체들을 통하지 않고는 인터넷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러나 그런 그도 일본에서 ‘이단자’취급을 받았다. 과감한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한 그를 일본의 기업문화에선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무시할 수 없는 거물이 되었다. 중국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마윈의 알리바바닷컴에 투자하여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던 손정의는 영국의 통신업체 보다폰을 일본 사상 최대 액수로 인수하였고, 최근에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제휴하여 아이포드를 내장한 차세대 휴대폰을 선보이겠다고 호언하며 일본 휴대폰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한국에서 그는 대안 시민언론 《오마이뉴스》에 거액을 투자하고, 한류배우 배용준과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제 아무도 그의 다음 행보를 예측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006년 신년호 1면 톱기사로 손정의를 다루면서 손정의의 도전정신이 새로운 일본의 원동력이라고 극찬하면서 꿈을 실현하려는 그의 정신을 ‘사무라이정신’으로 추켜올리기도 했다.

 

손정의는 이렇게 살아왔다!

한국 IT의 미래를 제안한 손정의

1988년 6월, 손정의와 빌 게이츠는 김대중 대통령과 만났다. 대통령은 두 사람에게 한국경제가 살 길을 물었고 손정의는 이렇게 대답했다. “첫째도 브로드밴드, 둘째도 브로드밴드, 셋째도 브로드밴드입니다. 한국은 브로드밴드에서 세계 최고가 되어야 합니다.” 빌 게이츠도 손정의의 의견에 100퍼센트 동의했다. 대통령은 지시를 내렸고 대한민국 초고속 인터넷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현재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은 75퍼센트로 세계 최고이다. 이에 반해 일본은 25퍼센트, 미국은 5퍼센트에 머물고 있다. (2004년도 기준)

 

탄광 노동자의 손자

1957년 손정의는 일제시대 대구에서 규슈로 건너온 탄광 노동자의 손자로 태어났다. 한번은 같은 유치원에 다니던 일본 아이들이 ‘조센진’이라고 야유를 퍼부으며 그에게 돌을 던졌다. 돌을 맞은 그는 머리에서 피를 흘렸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항상 밝고 명랑했던 그는 학업 성적도 우수했고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꼭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근성 있는 학생이었다.

 

3주 만에 따낸 미국 고등학교 졸업장

부푼 꿈을 안고 미국 고등학교에 입학한 손정의는 등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실망한다. 교과과정이 그에게는 너무 쉬웠던 것이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허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그는 속성으로 고등학교를 마치기로 결심하고 학교당국과 교육 관리들을 설득하여 검정고시를 치렀고 결국 고등학교 졸업장을 거머쥐었다.

 

인생을 바꾼 사진 한 장

어느 날 손정의는 늘 가던 슈퍼마켓의 서점 코너에서 과학잡지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를 구입했는데, 그 속에는 인텔이 발표한 i8080컴퓨터 칩의 확대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는 이 사진에 정신을 홀랑 다 빼앗겼다. 몹시 감동한 그는 그 사진을 오려 파일에 넣어서 늘 가지고 다녔다. 화장실에 갈 때도, 심지어는 잘 때도 베게 밑에 놓아두었다.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공교롭게도 빌 게이츠도 이 잡지에 실린 같은 사진에 큰 감동을 받았다.

 

캘리포니아의 발명왕

버클리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그는 생계를 해결할 필요성에서 발명을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하루에 한 가지씩 새로운 발명을 하기로 결심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허무맹랑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어디까지나 실행 가능한 인생 설계 중 하나일 뿐이었다. 유명한 발명왕 에디슨조차도 이런 목표는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수많은 발명품을 생산해냈고 그 발명 가운데 하나가 그에게 중요한 기회를 주었다.

 

자기 결혼식에도 늦는 워커홀릭

번역기를 개발하는 데 몰두해 있던 손정의는 약혼녀 마사미와의 결혼식 시간을 잊는 바람에 결혼식을 한 차례 미루었는데 그 미룬 결혼식에도 늦게 도착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두 사람의 결혼을 보증할 증인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그는 성당에 있던 흑인 경호원을 붙들고 사정한 끝에 겨우 결혼할 수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그런 집중력이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었다.

 

죽음을 이긴 투혼

“밤이 되면 병실에서 혼자 울었습니다. 치료가 힘들어서가 아니엇어요. 갓난아기인 딸과 회사를 놔두고 왜 내가 이대로 죽어야 할까. 입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즉시 은행에서 받은 융자도 끊어지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몰래 병원을 빠져 나와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지요. 그때 저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내가 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말이죠. 결론은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소프트뱅크가 파죽지세로 성장하고 있을 때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만성간염’이라는 진단이 나왔던 것이다. 그는 절망하지 않고 자숙하면서 적절한 치료법을 찾았다. 그는 투병하면서 『료마가 간다』를 다시 정독하면서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스스로를 불태웠는가가 중요한 것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다지면서 다시 한 번 강렬한 삶의 의지를 다졌고 결국 병상을 딛고 일어났다. 

신화는 계속된다

"높은 의지가 있다면 운도 따라오는 법이다' 그는 굳은 결심만 하면 어떠한 고난도 이겨 낼 수 있다고 여겼다. 사업을 통해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손정의가 청춘 시절 을 통해 함양한 것. 그것이 바로 높은 의지였다. 그 높은 의지란 바로 자신의 사업이 다가오는 디지털 정보 사회에 공헌라리라는 강한 자신감이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라'

이제껏 살아오면서 누군가로부터 많이 들어 왔던 말일 것이다. 하지만 손정의는 그의 삶을 통해 이말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 「일본의 제일부자 손정의」(이노우에 아쓰오 지음 / 김영사 발행)

출처 : 블로그 집필 - 빠라바라빠바밤~

마음에 새겨 둘 명언들

친구는 기쁨을 두 배로 늘려주고

슬픔을 반으로 줄여준다.

- 실러 -

 

세상이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지 마라.

세상은 날 가진 적이 없다.

- 박종영 -

 

빈곤이 문간에서 집안으로 스며들어 오면

거짓 우정은 곧 창문으로 달아나 버린다.

- 빌헬름 뮐러 -

 

20년 뒤를 상상해보라.

당신은 지금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 때문에

더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 마크 트웨인 -

 

사람들이 꿈을 이루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이 생각을 바꾸지 않고

결과를 바꾸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 존 맥스웰 -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을 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 세네카 -

 

지도자에 의해 주도되는 조직은

지도자의 능력 이상의 것은 이루어내지 못한다.

- 맥스 드프리 -

 

그 사람을 모르거든 그 벗을 보라.

사람은 서로 뜻이 맞는 사람을 벗으로 삼기 때문이다.

- 메난드로스 -

 

당신을 좋게 말하지 말라.

그러면 당신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당신을 나쁘게 말하지 말라.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말한 그대로 취급 받을 것이다.

- 루소 -

 

적이 한사람도 없는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라.

그는 중심이 없고 믿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차라리 분명한 선을 갖고 반대자를 가진 사람이

마음에 뿌리가 있고 믿음직한 사람이다.

- 알프레드 테니슨 -

 


2009년 6월 19일 금요일

'표해록'의 주인공, 홍어장사 '문순득'

'표해록'의 주인공, 홍어장사 '문순득'

 

'표해록(漂海錄)' 이라는 제목의 책은 현재까지 3종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하나는 탐진출신의 최부가 남긴 것과 제주출신의 장한철이 남긴 표해록, 그리고 정약전 선생이 저술한 표해록이다. 최부의 표해록이나 장한철의 표해록은 잘 알려져 있으나 정약전 선생이 우이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저술한 표해록은 비교적 늦게 그 존재가 알려져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표해록의 주인공이 '문순득(文淳得)'이란 사람으로 홍어장사였다. 정약전 선생이 홍어장사인 문순득의 표류생활을 생생하게 엮은 책으로 표해시말(漂海始末)이라는 제목으로 되어있다. 대대로 우이도에 살고있는 문순득의 5대손인 문채옥씨 집에 소장되어 내려온 여러 문건 중에 단지 저술되었다는 사실 외에 원본의 실체가 없었던 표해록이 뒤 늦게 발견되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표해시말(漂海始末)이란 제목의 문순득 표해록
 
'문순득', 이 사람은 1777년에서 1847년까지 조선후기를 살았던 실존인물로 본관은 나주 문씨이다. 당시에도 홍어는 서남해를 대표하는 어종(魚種)이었고 이런 홍어를 전문적으로 뭍과 유통하며 장사하던 이가 바로 문순득이다. 향토음식으로 7백 여 년이 넘는 홍어의 역사이지만 기록상으로나 구전으로 알려진 바로 최초로 홍어와 연관되어 나오는 이름 석자가 이 문순득이란 인물이다. 문순득과 표해록에 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온다.
 
(·····) 나주(羅州) 흑산도(黑山島) 사람 문순득(文順得)이 여송국(呂宋國,필리핀)에 표류한 일이 있는 바, 그 곳 사람의 형모(形貌)와 의관(衣冠)을 보고하고 그 나라의 방언(方言)을 기록하여 가지고 왔었다.(·····) - 순조9년(1809) 6월 26일
  
지금의 신안군 도초면인 우이도는 조선시대에 소흑산도로 불리우고 있었다. 이 섬에서 배를 두척을 부리던 문순득은 큰 배는 홍어를 잡고 작은 배는 잡은 홍어를 싣고 그때나 지금이나 홍어로 유명한 나주 영산포에 내다 팔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빈배로 가지않고 쌀과 곡식을 사 양식이 귀한 섬에 되 파는 장사를 하며 살던 문순득이 인생의 큰 전기(轉機)를 맞는다.

 
▲우이도의 옛 부두, 여기서 문순득은 출항과 귀항을 하였을 것이다.
 
문순득의 나이가 25살 때인 지금으로부터 2백년전인 1801년 12월의 어느 겨울날, 대흑산도 남쪽의 태사도에서 홍어를 사서 싣고 돌아오다 사나운 풍랑에 동네 선원들과 함께 타고 있던 배가 표류를 하게 된다.
 
이 때 문순득은 오키나와를 거쳐 필리핀에 다다르게 된다. 1805년 1월 8일에 중국을 통해 집에 무사히 돌아오기까지 무려 3년2개월의 시간이 걸린 본의 아닌 여정(旅程)이었다.
 
이미 일본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단행본으로 발간된 표해록은 문순득이 해류에 밀려 제일 먼저 기착 한 곳이 오키나와(유구국,琉球國)이다. 이 곳에서 문순득은 8개월이 넘는 기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중국으로 향했으나 무슨 기구한 운명이었는지 또 풍랑을 만나 필리핀(여송국,呂宋國)에 표착하게 된다. 여기서도 근 9개월이 넘는 기간을 지내다 중국에서 약 14개월을 보내고 의주를 거쳐 처자식이 있는 그리운 고향 땅을 밝게 된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홍어 어상(魚商)을 하던 평범한 섬사람인 문순득이 마침 우이도에서 유배 중인 정약전 선생에게 그가 표류해 다녀온 중국, 안남, 유구, 여송 나라들의 풍속과 의복, 가옥, 토산품, 언어, 선박 등등을 세세하게 구술하여 이를 체계적으로 기록이 가능하게끔 자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놀라운 것은 표해록 권말에 112개의 단어를 유구어, 여송어와 우리말로 비교, 나열해 실었을 정도이다.
 
문순득은 그저 단순히 일개 홍어장사가 아니라 대단한 두뇌와 관찰력의 소유자였고 해외 문물을 적극 수용하는 지금으로 치면 세계인이요, 개명한 선각자였던 것이다. 

 
▲문순득이 내려 받은 교지
 
후일 필리핀인들이 우리 나라 제주도에 표류해 온 적이 있는데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많자 조정에서 문순득을 불러 통역을 할 정도였다고 하니 어학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고. 유통을 알던 문순득이 표류생활 중 중국에서 직접 가져온 부채, 장신구와 상례가 적힌 서책들이 지금까지 집안대대로 유품(遺品)으로 내려오고 있다. 
 
또한 우이도의 문씨가문은 외딴 섬에 유배되어 절망의 나락 속에서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던 인물들에 대해 대대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문순득도 집안 내력대로 유배객 들에게 각별했던 모양으로 이때 정약전 선생과 서로 나눈 교류와 대화들은 막막하고 고달픈 귀양살이에서도 선생이 붓을 놓지 않게 하는데 큰 힘이 되었으리라 여겨지고 그저 한낱 이야기 거리로 치부되어 잊혀질 표류객의 체험담은 정약전 선생의 붓끝을 통해 소중한 기록유산으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1816년 우이도에서 유배 생활 중 숨을 거둔 형 정약전의 장례를 문씨(문순득 추정)들이 치러 준 고마움에 강진에서 유배 중이던 동생 다산 정약용은 감사의 편지를 보낸다.

 
문순득! 그의 파란 많은 생(生)도 흥미롭지만 서남해 바다 한 쪽 우이도 출신의 홍어장사인 그가 우리에게 남긴 행동과 자세에서 본 받아야 할 점은 크다 할 것이다.


출처 홍어세상 | 홍해촌장
원본 http://blog.naver.com/ysriver21/30020192714

[신안문화]표해록의 후손 문채옥씨를 찾아서


[신안문화13호-2003]                                             
 최성환의 신안문화탐방

 

                         표해록의 후손 문채옥씨를 찾아서

 

전남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리 233번지에 살고 있는 문채옥(1920년생)씨는 표해록(漂海錄)으로 알려진 문순득(1777∼1847)의 5대 손이다. 그를 찾아가 『표해록』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며, 현재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표해록』은 200여 년 전 우이도에 살고 있던 문순득이 1801년(순조1) 12월 태사도(흑산도 인근)에서 홍어를 사 가지고 돌아오던 중 표류를 하게 되어, 1805년 1월 8일에서야 고향에 다시 돌아오게 된 일을 기록한 책이다. 이 기록은 당시 우이도에 유배와 있던 정약전에 의해서 집필되었는데, 그 내용은 문순득의 표류과정과 그가 다녀왔다는 유구(琉球, 오키나와)·여송(呂宋, 필리핀)지역의 풍속·가옥·의복·선박·토산·언어 등에 관한 것이다.
문순득과 『표해록』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언급되고 있어, 그 가치를 더욱 명확하게 해주고 있다.

 

 [전략]나주(羅州) 흑산도(黑山島) 사람 문순득(文順得)이 표류되어 여송국(呂宋國)에 들어갔었는데, 그 나라 사람의 형모(形貌)와 의관(衣冠)을 보고 그들의 방언(方言)을 또한 기록하여 가지고 온 것이 있었다.[후략]-1809(순조 9)년 6월 26일

 

한동안 이 『표해록』은 원본이 유실되어 정약전이 저술했다는 이야기만 전할 뿐 그 전체 내용을 알 길이 없었다. 『표해록』의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후손인 문채옥씨의 공이 컸다. 문채옥씨는 고향인 우이도를 지키면서 선조들의 유품을 매우 소중하게 간직해 왔다. 그 중에는 『유암총서(柳菴叢書)』와 『운곡잡저(雲谷雜 )』라는 문집 형태의 작은 책 2권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중 『유암총서』에는  「표해시말(漂海始末)」이라는 이름으로 정약전이 지었다는 『표해록』의 내용이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이를 처음 확인한 사람은 민속학자 최덕원(전 목포해양대학) 교수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또한 다른 문집인 『운곡잡저』에는 역시 정약전이 저술한 「송정사의(松政私議, 나무정책에 관한 정약전의 견해)」'가 담겨져 있다. 「송정사의」 또한 그 제목만 전할 뿐 내용은 알려지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처음 밝혀지게 된 것이었다.


문채옥씨가 소중하게 간직해 온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정약전의 사라질 뻔했던 저서들이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아쉽게도 현재까지 이 문집들의 정확한 저자나 집필연대는 확인되지 못했지만, 정약전의 기록 외에도 당시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많은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정약전의 기록이 문채옥씨 집안(남평 문씨)을 통해서 전해 내려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과거에 우이도에 유배되었던 인물들이 문씨 집안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외딴 섬에 유배를 간 인물들은 그 지역 유지들의 도움을 통해 고난한 유배지에서의 생활을 버텨나갔던 것으로 보여지는 데, 우이도에서는 문씨 집안이 바로 그러한 도움을 줬던 것 같다. 정약전 보다 더 후대에 유배 왔던 최익현의 경우도 우이도에 들어가서 처소를 문주인이라는 사람의 집을 사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주인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문채옥씨가 소장하고 있는 족보를 들쳐보았으나 같은 이름을 찾아 볼 수는 없었다. 이는 문주인이 실존인물이 아니라기 보다는 그의 실제 이름과 족보에 남겨진 이름이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경우는 간혹 있는 사례인데 섬 지역의 경우는 특히 빈번하다고 볼 수 있다. 우이도의 문씨들은 유배 온 인물들을 도와주면서 중앙의 덕망 있는 인사들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해 오고 있었던 것으로 알 수 있다. 오늘날 행정구역상 도초면에 속하는 '우이도'는 과거 조선시대에는 흑산도와 같은 권역으로 분류되었고, 이름 또한 '소흑산도'로 불리기도 하였다. 때문에 최익현의 『면암집』에는 국가로부터 흑산도 유배에 처해진 사람들은 지금의 흑산도까지 들어가지 않고, 육지와 조금 더 가까운 이곳 우이도에 와서 유배 생활을 보내기도 하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표해록』은 기록을 한 정약전과 구술을 한 문순득이 합작한 200여 년 전의 해양문학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내용이 필리핀이나 일본의 언어와 풍속을 담고 있어, 신안군과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인지 일본의 어느 학자는 『표해록』을 영인하고, 일본말로 번역해서 이미 단행본으로 출간하기도 하였다. 또한『표해록』이 더 큰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것은 문순득이 표해 당시 가져왔다는 유품(부채, 장신구, 서적)도 지금까지 보관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채옥씨는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다는 문순득의 유품 몇 가지를 보여주었는데, 이는 문순득이 중국에서 직접 가져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순득의 경우처럼 관련 저술, 실록의 기록, 교지, 유품 등이 골고루 잘 보존되어 있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내 조상에 대한 관심과 후손으로서의 도리를 다한다는 문채옥씨의 정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다만 현재 문순득의 묘는 우이도가 아닌 해남군 화산면 봉지리에 모셔져 있다. 문순득을 비롯한 선조들의 묘는 돌아가시고 나면 육지로 나가서 모신다. 시제일은 음력 10월 15일이다.

 

다음은 문채옥씨가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1) 문집
○ 유암총서(柳菴叢書)
 ·크기: 세로 24cm, 가로 15,5cm
 ·분량: 총 95쪽
 ·주요내용: 漂海始末, 雲谷船說, 車說答客難
 ·자료적 가치: 정약전이 문순득이 표류했던 경험을 구술로 듣고 집필했다는 '『표해록』'의 내용이 실려 있고, 『표해록』에서 미쳐 언급하지 못했던 내용이 '운곡선설'이라는 이름으로 보충되어 있다.


○ 운곡잡저(雲谷雜 )
 ·크기: 세로 23cm, 가로 14.5cm
 ·분량: 총 177쪽
 ·주요내용: 운곡잡저권1-흑산도 관련 동정, 각종 소장, 민원. 松政私議
              운곡잡저권2-車說答客難, 贈言施洪量, 勤說示文絢, 百諺詩 등
 ·자료적 가치: 흑산진을 비롯한 당시 동정이나 민원 등에 관한 기록이 소상이 담겨져 있어 내용 분석을 통한 시대상과 사회상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약전이 집필했다는 '송정사의(소나무정책에 대한 정약전의 의견)'이 담겨져 있다.

 

2) 교지
·수량: 6종(문순득 외)
·크기: 가로 72cm, 세로 52cm(동일)
·문순득 교지: 년대 1835년(도광15년), 문순득을 嘉善大夫(종2품)로 임명한다는 내용.
·자료가치: 6장의 교지 중 가장 빠른 시기의 것은 문채옥의 8대조인 문계창의 것으로 1716년에 절충장군으로 내려진 것이다. 문순득의 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교지 하나하나 비단으로 말아서 보관되어 있다.

 

3) 호구장
·수량: 4종
·내용: 1841년 나주목 우이도 진촌 1통 4호 문씨 호구내용을 기록한 것
·자료가치: 우이도의 지명 주소체계, 문씨 가계 내용 등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4) 지도군 호적

·수량: 1종
·년대: 1897년 2월(건양2년)
·내용: 1897년 초대 지도군수 오횡묵이 발행한 호적 내용. 우이도 문광길의 호적으로 당시 38세였고, 조부가 가선대부 문순득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료가치: 1896년 지도군이 신설되면서 군수로 부임한 오횡묵이 그 이듬해 2월에 발행한 것으로 보인다. 지도군 초창기의 행정문서 서식을 엿볼 수 있고, 문광길의 가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년호를 建陽이라는 한국연호를 사용하고 있다.

 

5) 문순득 유품
·수량: 4종(상례에 관한 중국서책, 부채, 노리개, 실띠)
·내용: 문순득이 표류했다가 중국으로 거쳐 육로로 우리나라에 다시 돌아왔는데, 그때 가져온 것이라고 전한다.
·자료가치: 『표해록』을 남긴 문순득의 유품으로서 매우 큰 가치가 있고, 『표해록』의 가치를 더 높여 줄 수 있는 물증이다. 부채에는 특별한 그림이 그려져 있지는 않다.

 


6) 호패
·수량: 2종(유학 문광길, 유학 문상권)
·크기: 문광길 호패 8.3m, 문상권 호패 6.8cm
·내용: 문순득 후손의 호패이다.
·자료가치: 조선말기 신분증에 해당하는 자료이고, 문순득 일가와 관련된 유품으로 활용가치가 있다.

 

문채옥 씨가 들려준 이야기 전설
○ 굴봉과 관련: 굴봉이라는 곳이 있는데, 면암선생이 그곳에 자주 올라 글을 읽었다. 어느 날은 선생이 그곳에 올랐는데, 갑자기 많은 비가 내렸다. 그러자 선생이 종이에 뭔가 써서 마을 쪽으로 내려보내자, 마을에서 큰 삿갓 같은 것이 굴봉으로 떠올라 갔다. 면암선생을 그것을 쓰고 비를 피해 마을로 내려왔다.(굴봉에 대한 내용은 최익현의 면암집에 그 지명이 언급되어 있다.)

○ 큰 돌 들기: 마을에 커다란 돌이 있었는데, 아무도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그런데 면암 선생이 그 돌을 들 수 있으니 들어보라고 마을사람에게 말하면, 그 돌이 쉽게 들렸다.

○ 서당골: 마을에서는 공동산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부락에서 떨어져 있는데 그 곳을 서당골이라고 했으며, 정약전이나 최익현 선생이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 대문안집: 우이도에는 대문안집이라고 부르는 집이 있다. 어떤 사람이 지체 높은 분들만 사용할 수 있는 커다란 기둥과 초석으로 집을 지었기 때문에 관청에서 금지시켰다.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고, 아직도 마을 사람들은 대문안집이라고 부른다.

○ 선창공덕비: 선창가에는 1746년에 선창조성에 기여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공덕비가 세워져 있는데, 훼손과 마모가 심하고 위치 또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어, 문채옥씨는 이 비를 새로 건립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비문의 내용은 문채옥씨가 따로 써놓은 것이 남아 있다.


 

출처 추공의 문화세상 | 추공
원본 http://blog.naver.com/baguni11/60002921720